요더 2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누가의 시험 기사는 경제적인 선택의 문제로 시작한다. 이 기사를 읽을 때 흔히 쓰는 영적 안경 때문에 우리는 이 시험의 유혹을 순전히 개인적이고도 육체적인 것으로만 취급해 왔다. 예수는 배가 고팠다. 예수는 과연 기적을 통해 주린 배를 채우려는 이기심 때문에 자신의 전능함을 더럽힐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딱딱한 빵 한 조각 때문에 40일 금식을 깨지는 않는다. 설사 바위만한 떡덩이들이 들판 가득 널렸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고픔의 고통에 더욱 민감해짐으로써 야기된 혹은 더 강렬해진 유혹의 본질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풍성한 식탁을 베푸는 방식으로 메시아됨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이것이 결코 근거가 희박한 억측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어지는 이야기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혹은 이것이다. 무리를 배불리..

칭의란 무엇인가?

한스 베르너 바르취(Hans Werner Bartsch)는 바울이 로마 공동체 전체를 단 한 번도 '교회'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도입과 결말은 물론이요, 이 서신의 논증 전체에 걸쳐 주요 전환점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대립 문제가 등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율법의 자리에 관한 물음의 당면한 의미는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는가 하는 조직신학적 사색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인 로마의 상황, 곧 유대인과 헬라인, 율법적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용납해야만 했던 그런 상황이었다. (중략) 실로 '칭의'라는 단어는, (...) 곧 '사태를 바로잡는'(setting things right) 하나의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 존 하워드 요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