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8

매일 아침 150mcg

갑상선 전절제 수술 이후, 나는 씬지록신 150mcg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씬지록신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 치료제로 나처럼 갑상선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사람에게 갑상선 호르몬을 대체하는 약물이다. 매일마다 엇비슷한 시간에 나는 약을 복용하고는 한다. 전날 밤, 식탁 한편에 물컵과 함께 약을 놓아두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아침에 눈을 뜨면 마른 입 속으로는 찬물 한 모금과 함께 약을 창자 속으로 욱여넣는다. 약물은 내 위장에서 녹아 마치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갑상선 호르몬 전부가 되어 내 온몸을 구석구석 돌아다닐 테다. 마치 이전부터 내 몸의 일부였던 것처럼. 씬지록신은 그렇게 내 갑상선을 대체한 지 꽤 되었다. 내 몸의 일부였으나 이제는 내 몸의 일부가 아닌, 내 갑상선은 ..

요양병원에서의 퇴원

1. 지난 화요일 저녁, 병원에서의 마지막 식사 후, 병원 문을 나섰다. 이 동네에 정착한 지도 벌써 6년이 다 되어 지겨울 법도 한데, 병원 밖 집 앞 거리를 거닐 수 있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초겨울의 저녁은 차다. 차가운 저녁 공기가 슬리퍼 밖을 삐져나온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퇴원으로 흥분한 몸에서 나는 열로 추위는 어떤 문제도 되지 않았다. 늘 학교를 다닐 때면, 이 요양병원 앞에서 대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눈길이 이상해 보였다. 그러나 그 시선을 이해하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접 입원해 보니 회복과 자유를 향한 동경의 눈짓이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 병원이 비록 유쾌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낡고 허름한 수도원의 수도승의 마음으로 며칠을..

갑상선암 수술 6일차

1. 지난 주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입원했던 5박 6일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온전히 몸이 회복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집 근처 작은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넉넉하게 병가를 쓸 수 있었던 덕분에, 조금 더 회복해서 회사에 복귀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통증은 있지만, 이제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다만, 뻣뻣해진 오른 편의 어깨와 목이 자연스러워지기에는 시간이 조금은 더 걸릴 것 같다. 이전처럼 다시 몸이 회복되는 데에는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조급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 내가 입원한 요양병원은 어르신들이 주로 입원해 있는 병원이다. 그러나 인테리어 공사를 앞두고 있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1. 지난 화요일 오전, 마취과 진료를 받은 후에 오후 3시쯤 입원을 했다.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안부를 물어 왔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 기도 덕분에 한결 편하게 수술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입원한 세브란스 암병원 12층에는 갑상선외과 병동만 아니라, 소아과 병동이 있어 어린 환자들이 많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 어린아이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리는 한편, 또 다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는 한다. 이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쁨과 슬픔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게 될런지 의문이 들었다. 2. 수요일 오전 5시, 링거를 꽂고 수술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전날 잠을 설친 것도 이유가 있겠지만, 다소 이른 시각인 까닭에 아내와 나는 그대로 다시 잠에 들었다. ..

갑상선암 수술 하루를 앞두고..

지난 6월,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반년이 흘렀다. 물리적으로 반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닐 테지만 “순식간”이라는 단어가 적합할 정도로 나는 6개월을 허겁지겁 보냈다. 당시 예비신랑이었던 나는 예식을 연기해야 할는지, 혹은 그대로 진행해도 좋을지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예정대로 결혼식을 추진하자고 결심했던 아내에게 큰 빚을 지게 되었고, 그녀의 용기 덕에 나는 지난 반년 간 부단히 결혼식과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자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아내와 함께하며 느낀 기쁨과 감격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지난 반년에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시간 동안 질병과 고통을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 후회 때문이다. 밤을 새워 지난 날을 되돌아봐도 모자랄 판에, 나는 충분히 기..

종말(終末)의 일상성

1. 종말(終末)이란, 현상의 맨 끝을 뜻한다고 한다. 이런 연고로 기독교 세계에서는 일상적이지 않은, 불가해한 신적 신비를 말할 때에 종말의 언어가 자주 쓰이고는 했다. 이러한 비일상적인 하나님의 신비를 향한 호기심은 사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듯하여, 제자들도 종말에 대하여 예수님께 물었던 적이 있다(마 24-25장). 그래서 사람들은 마태 공동체가 종말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유대-그리스도인 집단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는 하나 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으로 평범한 사람의 심연에 호기심을 가장한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마찬가지로 나도 종말에 대한 호기심 한줌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종말을 맞이하게 ..

갑산선암 진단

1. 지난 금요일, 느긋하게 잠에서 깨어나 몸단장을 했다. 10시 10분, 세종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집을 나섰다. 2. 그날따라 버스에서 읽으려던 책이 유난히도 읽히지 않았다. (나는 를 읽고 있었다) 데리다가 문제인지, 테드 제닝스가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무슨 말인지 도대체 책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꾸역꾸역 문장문단을 읽어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독서란 고루한 과정을 견디어 내는 것이고, 인생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3. 서울에 도착하자 나는 재빠르게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2주 전에 했던 검사의 결과를 들으러 누나와 함께 병원에 가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신촌역 근처에서 즉석 떡볶이를 먹고,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손에 든 채 병원으로 향했다. 혀끝에서 전해..

병고의 은총

어제(화요일) 15시, 제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여수공항에 도착했다. 16시 비행기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여유 있게 1시간 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항 앞에서 엄마의 전화가 왔다. 지난 월요일에 받았던 피검사 결과를 의사에게 유선으로 들었던 것을 내게 재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피검사 결과, 의사는 내가 ‘갑상선항진증’이라고 말했다. 이는 호르몬 분비를 하는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비정상적으로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는 증상을 뜻한다고 한다. 예전에 아빠도 체중이 줄어 병원에 내원한 결과, 동일한 병을 진단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다. 아마도 가족력의 영향이 큰 듯했다. 최근 들어, 체중이 줄었던 까닭이 질환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다니. 다행히 이는 약을 복용하면서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목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