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싫은 책과 문장 66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17살 때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요리사와 웨이터로 일했어요. 대학에 꼭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좋아하는 요리사와 웨이터 일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식당에 취직했죠. 거기서 공부와 일을 병행했고요.” (…) 인터뷰 중간에 P가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올해 22살인데 열쇠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어요.” 열쇠 수리공? 평생 식당 종업원으로 일해온 아버지 밑에서 자란 '출세'한 아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던 나는 솔직히 좀 의아했다. 그러나 P는 되레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아들이 판검사나 의사나 교수가 되길 바라지 않았어요. 열쇠수리공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하고 의미 있는 직업입니까?” (…) 한 대기업 간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비로서 참 부끄럽다..

비루한 신앙

“작중 사제 로드리고가 박해기 일본의 나가사키 험지에서 맞닥뜨린 것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기리시탄 농민들의 삶이었다. 농민들은 비참한 삶의 탈출구로서 내세 신앙에 붙들려 있었다.” - "복음과 상황" 12월호 커버스토리 中 일반적으로 현실에 불만족하면 내세 신앙이 강하고, 현실에 만족한다면 현세 신앙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 말로 저울질해 보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느새 자기희생과 고통, 역경과 같은 단어들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수록 배 나온 아저씨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중산층/보수화 된 이에게 천국 소망이 중요할 수 없습니다. 덮어놓고 따뜻하면 그만입니다. 처음 사랑, 별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배고프고 아프면 자연스레 회복됩니다. 비루한..

<회심의 변질>

이호테우 바닷가에 캠핑 의자를 펴 놓고 을 읽고 있다. 저자는 초기교회의 회심에 수반되는 세 가지 변화를 3B, 즉 신념(belief)과 행동(behavior), 소속(belonging)의 변화로 설명한다. 회심이 개인 신념의 변화(change)가 아닌, 행동과 소속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뜻이다. 초기 교회의 회심은,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이 이해하는 신념(belief)으로서의 신앙이 아닌, 소속(belonging)이라는 신앙에 보다 가깝다. 다수의 양심적인 기독 지성인들이 말하는 행동(behavior)의 변화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셈이다. 신념과 행동의 변화 이후, 비로소 제국이 아닌 교회의 회원으로 소속되기 때문이다(이 지점이 심정적으로 가나안성도를 이해하지만, 마냥 긍정하기 어려운 지점이 아닐까 한다)..

루미나리스

는 성인(聖人) 혹은 성인에 준하는 20명의 영성가들의 삶과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 모음집이다. 저자 로완 윌리엄스는 1세기의 바울에서부터 20세기 로메로까지 그들의 삶을 추적한다. 시몬 베유(Simone Adolphine Weil)는 18번째 영성가 중 하나로 다뤄진다. 신비주의자로서의 그녀의 명성과 달리, 그녀의 이야기는 그리 대단치 않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보노라면, 어느 곳에도 적응하지 못한 작은 철새가 떠오른다. 그러나 실패담의 연속과 같은 그녀의 내러티브 속에서 위로를 얻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같은 바울보다, 야곱이 더욱 사랑스러운 것과 같다. 정형화될 수 없는 시몬 베유의 신비주의 영성은, 이성의 교만함(Superbia)을 멀리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는..

습관이 영성이다(You Are What You Love)

오늘날,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종교 시장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가진 복음주의 사상을 팔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 호기롭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에겐 경쟁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남들과는 다른 브랜딩 상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새로운 방식의 카테고리 안에서 대안적인 목회를 한다고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뻔한 경우가 많다. 외형적인 면에선 신선한 매력이 넘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다. 기존 교회에 대한 비판은 있으나 구체적인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부패한 교회, 타락한 목회자 덕분에 반사이익을 얻는 것이다. 건설적인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토대가 되는 텍스트(성서, 교회전통)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한데, 시대적 흐..

기독교 예배의 서사 구조

모든 전통에서(따라서 “공교회성”, 즉 보편성을 띤다) 역사적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이 그분의 은혜로 만물을 자신과 화복하게 하신 사건(골 1:20)을 중심으로 한 기본 줄거리나 서사 구조를 반영한다. 많은 이들이 역사적 기독교 예배는 회중을 네 장으로 이뤄진 이야기로 초대한다고 지적했다. 모임 > 들음 > 사귐 > 보냄수 세기에 걸쳐 전해 내려온 기독교 예배의 서사 구조는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관계를 거시적으로 재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단계에서는 추가되는 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여는 “장”에 해당하는 모임은 예배로의 부름으로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이 은혜 가운데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셨음을 상기시키고, 창조주가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연주가 시작되고 교인들이 천..

누가 사람이냐

거듭 말한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나는 보통 평범한 인간이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는, 내가 평범한 보통 인간이 아니다. 나의 마음 속에는, 내가 매우 중요한 나다. 내가 당면하고 있는 도전은 나의 존재의 숨어 있는 존귀함을 어떻게 실현시키고, 어떻게 구체화시키느냐이다. 모든 고뇌와 불안 너머에 자아-성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나의 실존의 존귀함이 있다. 나 자신의 마음 속에 나의 실존은 독특하고 비할 데 없이 값지며 차라리 값으로 따질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의 의미를 도박으로 잃어버리는 일은 생각조차 거부한다. 실제 인간들의 실제 생활 속에서 삶은 하나의 부담으로 느겨지는 대에조차 매우 소중하게 받아들여진다. 인간 존재의 진실은 살아 있는 존재의 사랑이다. 사람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역겨워함으로으로써..

성육신을 도모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참사람> 3부를 읽으며

월터 윙크(Walter Wink)의 3부(“참사람: 부활절 이전의 말씀들”)를 읽으며, “사람의 아들”이란 칭호가 갖는 신비를 생각하고는 한다. 이 칭호는 기독교 내에서 예수님의 독점적이고 배제적인 호칭으로 사용되고는 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로서 예수님께서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온전히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유기적 존재)으로 고백되었다. 지금에야 정통교회 내에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이 없다고 하지만, 교리가 체계화되지 않았을 때의 초기 교회가 겪은 혼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치적 목적으로) 소모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기에, 교회가 쉬이 간과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도 기독론에 대한 문제 제기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참사람> 1-2부를 읽으며

일찍이 신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운명의 장난 아닌 장난(?)으로 철학과에 진학했던 나로서는 처음으로 신학 과목을 수강했던 때를 잊을 수 없다. 경건한 자세로 앉아 필기구를 손에 움켜쥐고 하나님의 조명을 사모하던 나는 강사의 호흡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점점 수업을 들으며 나는 그를 의심하게 되었고, 은밀히 증오하며 결국엔 자유주의 신학자로 그를 단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학기는 마무리되었지만 수업을 들은 후, 문득문득 찾아오던 혼란과 의심에서 나는 헤어나올 수 없었다. [자유주의 신학자(?)에 의해] 있던 신앙마저 사라지게 만든 ‘숨겨진 기독론’! 이놈의 불순한 사상을 정화시키기 위해 걸핏하면 나는 애꿎은 마귀를 들먹이곤 했다. “나싸레th 예쑤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