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침례파 2

이야기, 침례교회

[사도행전 4:19-20, 새번역] 19.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월 마지막 주일, 많은 교회에서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날로 지키고는 합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이자 수도사제였던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교황청에서는 성 베드로 성당을 보수, 건축할 자금을 벌기 위해 큰돈이 필요했고, 이에 교회에서 돈을 받고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면벌부(면죄부)였습니다. 이는 일종의 사면권을 보증하는 증서로 볼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광복절 특사를 생각해 볼 수 있습..

루터와 재침례파의 칭의와 성화 이해

후브마이어는 믿음으로 얻는 의인에 관한 루터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고 말씀의 실천을 내면이 아니라 생활 공동체(Lebensgemeinschaft)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루터와 달랐다. (...) 그러나 후브마이어를 비롯한 재침례파는 루터가 믿음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재발견한 것과 달리 "성화(聖化, Heiligung)로의 성서적 요청"을 재발견했다. 신앙을 내면의 변화로 본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것으로 보았고 의인과 성화의 이론적 체계를 형성하려고 시도한 대신, 의인과 성화를 "삶의 개선(Verbesserung des Lebens)"으로 수렴하려고 노력했다. ​​ - 장수한, "사회의 역사로 다시 읽는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역사",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