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 2

루터와 재침례파의 칭의와 성화 이해

후브마이어는 믿음으로 얻는 의인에 관한 루터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고 말씀의 실천을 내면이 아니라 생활 공동체(Lebensgemeinschaft)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루터와 달랐다. (...) 그러나 후브마이어를 비롯한 재침례파는 루터가 믿음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재발견한 것과 달리 "성화(聖化, Heiligung)로의 성서적 요청"을 재발견했다. 신앙을 내면의 변화로 본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것으로 보았고 의인과 성화의 이론적 체계를 형성하려고 시도한 대신, 의인과 성화를 "삶의 개선(Verbesserung des Lebens)"으로 수렴하려고 노력했다. ​​ - 장수한, "사회의 역사로 다시 읽는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역사", 47.

칭의란 무엇인가?

한스 베르너 바르취(Hans Werner Bartsch)는 바울이 로마 공동체 전체를 단 한 번도 '교회'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도입과 결말은 물론이요, 이 서신의 논증 전체에 걸쳐 주요 전환점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대립 문제가 등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율법의 자리에 관한 물음의 당면한 의미는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는가 하는 조직신학적 사색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인 로마의 상황, 곧 유대인과 헬라인, 율법적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용납해야만 했던 그런 상황이었다. (중략) 실로 '칭의'라는 단어는, (...) 곧 '사태를 바로잡는'(setting things right) 하나의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 존 하워드 요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