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2018)의 저자 엄기호는 곁을 지키는 자가 빠지는 번아웃의 또 다른 원인을 여러 사람의 증언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하위주체'라고 불리는 고통 속에 있는 자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고통을 설득이나 공감을 자아내는 언어로 타자에게 잘 설명하기보다 비명이나 침묵, 넋두리와 같은 '소리' 차원으로 표현한다. 설사 '말'의 형식을 갖추고 있더라도 상당수는 곁을 지키는 자가 대답하기에 '넌더리'가 날만큼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이거나, 곁을 지키는 자의 능력을 벗어난 요구일 때가 허다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그러한 말은 "응답을 요구하지도, 응답할 수도 없는 말처럼 들린다.(엄기호, 227쪽) "일방적으로 (내 말을) 들으라는 명령"처럼 들리기도 한다.(233쪽) 하지만 그 말이 처음부터 응답을 요구한 말이 아니라고 해서 결코 '곁을 지키는 사람'에게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말을 교환하며 타인과 교제하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구성해가는 언어적 존재이기에, 상호성이 배제된 일방적 언어 환경에 계속 노출되면 결국 '인간다움'이 손상되거나, 더 정확히 말해 '인간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하기 쉽다.
- 복음과 상황: 2021년 4월호, 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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