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자료/묵상

세상을 전복시키는 은혜

habiru 2020. 6. 28. 22:34

신약성경에서 은혜(χαρισ)라는 말은 선물, 은사와 같은 단어라고 한다. 이 세 단어(선물, 은혜, 은사) 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시장에서 사람들은 각기 갖고 있는 물건(재화)이나 능력(노동력)을 교환하고는 한다. 등가의 물품 혹은 서비스를 교환하며 거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때를 두고 시장이 잘 돌아간다,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등가교환의 법칙을 파괴하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조건 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 혹은 증여해 버리면서 시장의 경제를 깨뜨리는 사람이 등장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시장 거래에서 이탈되어 있던 이들을 포함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이 불순한 사람을 없애려고 모의할 것이다. 시장이 깨지면서 발생하게 되는 무질서와 손해를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성경 안에서 이같은 이들을 유추해 보자면, 유대 지도자들과 로마의 관리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소 도발적인 말로 교환의 경제를 생환시키려는 이들을 두고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라고 지칭했다. 되갚을 수 없는, 교환할 수 없는, 바로 그런 것으로서의 선물과 은혜, 은사, 증여, 상속을 무의하게 하는 사람들을 두고서 맹렬히 비난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은, 기존의 거래 자체를 무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울은 더 이상 등가의 재화나 서비스를 교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진리를 수호한다. 어떤 방법이라도,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 불가하다는 것의 인정이 절실한 것이다. 거래하고 교환하려는 관성에 노출되어 있던 시장의 상인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물에 선물로 보답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선물되게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은혜의 급진성이 세상을 전복시키는 혁명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는 것만 같다. 어떻게 나는 제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의문이다. 나태주 시인은 선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태주, <선물>
받는 것은 될수록 줄여서 받고
주는 것은 될수록 늘려서 주리
그대 내게 주시는 것
비록 작더라도
큰 상으로 알고 받겠으니
내가 주는 것 비록 크더라도
작은 별로 바꾸어 받으시라.



'예배 자료 >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7/12, 성령강림 후 제6주(개정판공동성구집)  (0) 2020.07.12
주님은 신실하고...  (0) 2020.07.05
참 사람 나다나엘  (0) 2020.05.31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0) 2020.04.26
여자여, 왜 우느냐?  (0) 202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