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대학입학을 위해 상경을 했다. 낯선 장소, 낯선 사투리의 사람들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당시 삭막한 도심 속 높게 솟은 건물들 가운데 유일한 즐거움은 한강을 보는 것이었다.
고향 앞바다가 그리울 때 이따금씩 한강을 둘러봤지만 바다 내음새 하나만은 한강이 대신할 수 없었다.
세련된 서울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른 깍쟁이들처럼 느껴졌지만 한편 세련되고 단정하게 보였다. 금세 무의식적으로 신사숙녀다운 말투를 동경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단박에 호남사람임을 감출 수 있도록 표준어를 구사했던 것 같다. 고향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었지만 구수한 남도 사투리는 입 밖에 내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그렇게 나는 서울 사람들과 빠르게 동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학교 문제로 대전에 오게 되었다. 종종 어르신들이 이전엔 어디서 살았느냐고 물어왔다. 종전 서울에서 살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좋게들 여겼다. 그러나 고향 호남 얘기를 꺼낼 때는 느낌인지 모르지만 멋쩍어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땐 잘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교회차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던 길이었다. 할머님들 사이에 이야기가 오갔다. 이야기인즉슨, "전라도 사람들은 독하다. 사기꾼들이 많다."라는 것이었다.
좁은 공간 속 피할 수 없는 험담에 고향을 숨죽여 모르는 척 해야 했던 마음에 괴로웠다. 아마도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했을 것이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나 말고도 호남 출신의 한 분도 가만히 있어야 했더랬다. 시간이 지나 내 고향을 알아차린 할머님이 말을 걸어왔다.
"전도사님, 내가 호남 얘기했던 건 기분 나쁘게 듣진 말아. 내 인생에서 나쁜 호남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랬어."
나는 괜찮다고 멋쩍게 웃어보았지만 괜찮지 않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 호남 사람으로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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