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자료/묵상

자애를 구하는 기도

habiru 2019. 7. 15. 08:03

1. 시편 69편. (68) [지휘자에게. 나리꽃 가락으로. 다윗]

2.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목까지 물이 들어찼습니다. 

3. 깊은 수렁 속에 빠져 발 디딜 데가 없습니다. 물속 깊은 곳으로 빠져 물살이 저를 짓칩니다. 

4. 소리 지르느라 지치고 저의 복도 쉬었습니다. 저의 하느님을 고대하느라 제 두 눈마저 흐려졌습니다. (...)

6.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의 어리석음을 아시며 당신께는 저의 죄악들이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

14. 그러나 주님, 당신 마음에 드시는 때에 저의 기도가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하느님, 당신의 크신 자애로, 당신 구원의 진실로 제게 응답하소서. 

 

  언젠가 사람이 하나님의 자애로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멈출 때가 있을까. 하나님의 자애로우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때가 찾아올 것인가 상상하기 어렵다. 수조에서 방금 나와 팔딱 거리는 활어가 당장에는 싱싱해 보이지만, 얼마나 물 밖에서 버틸 수 있을런가. 사람도 그렇다. 잠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우심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호언장담하나, 종내는 하나님의 자애로우심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다시스로 떠나던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모든 인간적 존재가 그러하다. 홀로있음의 존재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인간은 다시 겸손해진다. 

  인간의 존재는 한없이 나약하다. 그러나 또한 이 나약한 존재는 제 분수와 힘을 몰라 가늠하지 못해 자주 자신이 넘치기 마련이다. 인간은 제 멋대로 인생을 재단하고 계획한다,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듯. 독립성을 대단한 미덕으로 삼으며 모험정신, 탐험정신을 장려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웃으신다. 얼마 못 가서 인간이 다시 당신의 자애로우심을 구할 것을 뻔히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의 현존, 얼굴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뼈저리게 느껴진다. 하루 중에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시간을 나는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홀로있음의 고독한 존재가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이 고독함은 사람을 통해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단코 메꿔지지 않는 고독함이다. 요새는 하나님의 현존을 인지하기가 무진장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을 때에도, 정오의 마귀인 나태함acedia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태함이 엄습할 때에 나는 하나님의 현존을 구하는 부지런함을 잊어버린다.

  밤낮으로 하나님을 묵상했던 다윗의 성실함, 그의 철저한 의존성이 부러울 따름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잠식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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