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자료/묵상

지도자의 자질

habiru 2019. 7. 13. 08:20

시편 68편. (67) [지휘자에게]. 다윗. 시편. 노래]

2. 하느님께서 일어나시니 그분의 적들이 흩어지고 원수들이 그 앞에서 도망친다. 

3. 연기가 흩날리듯 그들은 흩날려 가고 초가 불 앞에서 녹아내리듯 악인들이 하느님 앞에서 멸망해 간다. 

4. 그러나 의인들은 기뻐하며 뛰리라. 하느님 앞에서 기쁨 속에 즐거워하리라. 

 

  시편 68편에는 왕의 즉위식 광경이 묘사된다. 수많은 행렬을 이끌고 왕이 예루살렘에 당도한다. 왕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돋아나고, 왕을 적대했던 세력들은 힘을 잃고 줄행랑을 친다. 왕의 즉위식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긴 행렬을 이루어 왕을 찬양하는 무리에 앞장선다. 사막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이웃나라의 왕들이 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낸다. 왕은 그 위엄에 걸맞게 태초의 하늘을 타고 달릴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며, 그 소리가 우렁차 하늘에까지 울려 퍼진다. 어떤 영화라도 이만한 스케일의 웅장함을 재현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심훈 선생님의 <그날이 오면>의 시가 생각난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다윗에게도 그만큼 ‘그날’에 대한 간절함, 소망이 있었던 듯싶다. 하지만 대개 이만한 웅장함의 구색을 맞추다 보면, 쉽게 잊히는 이들이 있다. 88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정부는 허름한 판자촌에 사는 주민들, 노숙인들, 장애인들을 서울 밖으로 내몰았다고 한다. 그들의 존재는 명()을 가릴 암(暗)적 존재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그러했다. 그래서 서울 올림픽의 성공에는 약자들의 피와 눈물이 서려있다. 늘 힘없는 자들은 도태되고 밀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처럼 보인다. 대신에 왕의 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공신들은 당당하게 앞자리를 차지하고, 원주민들을 몰아내기 십상이다. 

  그러나 시편 68편 6-7절ab은 기이하다.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거처에 계시다. 하느님은 외로운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사로잡힌 이들을 행복으로 이끌어 내시는 분이시다.” 너무나도 역설적이라 해괴하다. 이 왕은 밝고 아름다운 면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선동가와 다르다. 여기에서는 외톨이들을 유심히 살펴볼 섬세함을 가진 왕의 자질이 드러난다. 어떻게 이런 인간애를 가진 왕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지만,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시타델의 독재자 임모탄 조를 처치한 맥스와 큐리오사 일행을 반겨 주던 인파가 핵전쟁으로 고통받던 이들, 장애인들, 극빈층, 노유자들이었던 것이 생각난다. 짧은 컷이었지만, 매우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였다. 마찬가지로, 응당 시편의 왕은 경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아니 그보다 더한 환영을 받으셔야 할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성소에서 경외로우시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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