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목회 사역을 하면서 소진되는 것 같은 느낌을 참 많이 받았다. 소진될 때의 느낌을 묘사하자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갈대는 땅 바닥에 뿌리를 내렸건만 바람은 하염 없이 갈대를 흔들고 조롱한다. 뿌리는 뽑히지 않을지언정, 허리가 휠 것만 같다. 갈대는 애처롭게 바람을 바라보지만 바람은 말한다.
“나는 바람길을 따라 가는 것뿐이니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바람은 냉랭하게 이성적으로 대꾸할 뿐이다. 그래서 어김없이 갈대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 겨울바람은 차갑다.
요한계시록 10-11장은 보다 문학적으로 갈대와 바람의 관계를 묘사한 듯 하다.
“천사와 작은 두루마리”
(요한계시록 10:1-11 RNKSV)
“또 나는 힘센 다른 천사 하나가 구름에 싸여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고, 그 얼굴은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과 같았습니다. 그는 손에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펴서,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른발로는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디디고 서서, 마치 사자가 울부짖듯이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부르짖으니, 일곱 천둥이 각각 제 소리를 내면서 말하였습니다. 그 일곱 천둥이 말을 다 하였을 때에, 나는 그것을 기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나는 하늘로부터 나오는 음성을 들었는데, “그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인봉하여라. 그것을 기록하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본 그 천사, 곧 바다와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그 천사가 오른손을 하늘로 쳐들고,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시고,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계시는 분을 두고, 이렇게 맹세하였습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일곱째 천사가 불려고 하는 나팔 소리가 나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에게 전하여 주신 대로,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늘로부터 들려 온 그 음성이 다시 내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그 천사의 손에 펴 있는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라.” 그래서 내가 그 천사에게로 가서, 그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고 하니, 그는 나에게 말하기를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것은 너의 배에는 쓰겠지만, 너의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하였습니다.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그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서 삼켰습니다. 그것이 내 입에는 꿀같이 달았으나, 먹고 나니, 뱃속은 쓰라렸습니다. 그 때에 “너는 여러 백성과 민족과 언어와 왕들에 관해서 다시 예언을 하여야 한다” 하는 음성이 내게 들려 왔습니다.”
“두 증인”
(요한계시록 11:1-14 RNKSV)
“나는 지팡이와 같은 측량자 하나를 받았는데, 그 때에 이런 말씀이 내게 들려 왔습니다. “일어서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어라. 그러나 그 성전의 바깥 뜰은 측량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그것은 이방 사람들에게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거룩한 도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다. 나는 내 두 증인에게 예언하는 능력을 줄 것이다. 그들은 천이백육십 일 동안 상복을 입고 예언할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서 있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요, 촛대 두 개입니다.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 활동을 하는 동안에,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몇 번이든지, 어떤 재앙으로든지, 땅을 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아비소스 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서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그 큰 도시의 넓은 거리에 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 또는 이집트 라고도 하는데, 곧 그들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입니다. 여러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 두 예언자의 시체를 볼 것이며, 그 시체가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그 시체를 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것은 이 두 예언자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나님에게서 생명의 기운이 나와서 그들 속으로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두 예언자가,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로 “이리로 올라오너라” 하는 큰 소리가 울려오는 것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바로 그 때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그 도시의 십분의 일이 무너졌는데, 그 지진으로 사람이 칠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남은 사람은 두려움에 싸여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둘째 재난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셋째 재난이 곧 닥칠 것입니다.”
목사 요한은 천사에게서 받은 작은 두루마리(성경)를 가져다가 먹는다. 말씀은 달콤하면서도 쓰다. 성경을 설교하는 목회자의 심정이 그렇다.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얻게 되는 단 맛, 그러나 말씀을 소화시키는 데에서 오는 더부룩한 쓴 맛이다. 성경 읽기는 쉬울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결코 쉽고 유쾌할 수 없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번개와 같고, 천둥과 같다.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성품은 조화될 수 없으며,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소화가 잘 된다면, 그는 다시 성경을 읽어야 한다. 나 하나만 아니라, 하물며 교회는 얼마나 성경에서 이탈해 있는가 확인하게 될 때마다 오는 좌절감이 그것이다.
11장에 이르러서는 말씀을 받아 먹은 요한에게서 두 증인에게로 시선이 바뀐다. 그러나 두 증인은 다림줄 환상을 본 아모스처럼 측량자로 쓸 막대기를 갖고 있는 목회자다. 두 증인은 요한과 그의 동료 목회자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증언하였으나 야수들의 권력에 의해 순교하고 미움을 받았다. 요한과 같이 그들은 아무도 없는 섬에 덩그러니 내버려졌고, 죽어선 무덤에 안장조차 되지 못한 채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들은 사람들의 양심을 찔러, 마음껏 죄를 즐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은 미움을 받는다. 익숙하지 않은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을 증언하는 데에서 오는 맹렬한 저항은 목회자를 불사른다.
무작정 부활을 기다리며 희망을 갖는 것을 읊고 싶진 않다. 그러나 예정되고 예견된 하나님의 섭리 안에 목회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느낀다. 목회자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다. 그게 우리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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