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구도자 선생님께(2)

habiru 2024. 9. 20. 23:04

안녕하셨어요, 선생님. 오랜만에 연락을 드립니다. 어느새 추석이 다가왔는데, 아직까진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시길 빕니다. 

최근에 저는 <에일리언: 로물루스>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세계관에서도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길가메시 서사시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면이 있는 거 같았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 인류를 창조한 엔지니어(프로메테우스)를 찾아간 사람이 있었고, 결국 그는 엔지니어를 만나지만 영생을 얻는 데에 실패합니다. 마치 길가메시처럼요. 

신학자들은 아래로부터(인간으로부터) 진리를 획득하느냐, 혹은 위로부터(신으로부터) 진리가 계시되느냐, 이 얘기를 오래도록 논쟁했습니다. 위대한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펠라기우스와 논쟁한 이유도, 마르틴 루터가 “오직 은혜”(Sola Gratia)를 기치로 삼고 로마 교황청과 대립한 이유도 비슷할 겁니다. 

그에 대해 저는 명확한 답을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솔깃한 마음이 들 때가 다른 거 같습니다. 정직한 속내로는 그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 그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나이가 들어 직장 생활도 하다 보니, 그런 논쟁이 내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런 무용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단, 밤하늘을 바라보며 초월적 존재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몇몇 사람들과 저희 집에 모여 밤새 놀고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 3~4시쯤 밖에 나가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밤하늘에 새겨놓은 별빛이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그때, 제 마음 속에 든 경외감은 우주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초월에 대한 인식을 지식, 합리성만으로 하진 않습니다. 여러 신존재 증명이 있지만, 저는 어떤 변증보다 더욱 설득력 있는 건, 신을 향한 숭고한 감정과 삶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느끼는 사랑을 호르몬의 화학적 작용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에서 영혼의 숭고함이 느껴지듯, 초월을 향한 경외와 신비가 인간이 발견할 수 있는 조그만 오솔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주저리주저리 말했습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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