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자료/설교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habiru 2022. 3. 17. 23:05

본문 : 시편 25편 1-10절

1.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2. 나의 하나님, 내가 주께 의지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가 나를 이기어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지만, 함부로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4. 주님, 주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주께서 가시는 그 길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5.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6. 주님, 영원 전에서부터 변함이 없으신, 주의 그 긍휼하심과 자비로우심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7.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실수를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자비로우심과 그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8.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9.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10. 주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신실과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애달프도록 기다린 적이 있으실 겁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길 기다리기도 했을 겁니다. 저도 날짜까지 세어 가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길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D-day 날짜인 2011년 11월 1일까지 며칠이 남았는지, 또 며칠이 지났는지 세어 가면서 전역을 기다렸던 20대 초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여러분은 언제 그런 가슴 떨리고 초조한 기다림의 순간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애타는 기다림이란, 기약이 정해져 있지 않은 만남, 연인에 대한 기다림,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래도록 품어온 사랑을 고백한 후, 상대방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 말입니다. 문득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경상북도 영주에 가면 부석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절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신라 시대, 문무대왕이 왕위에 있던 시절입니다. “썩은 해골 물 사건”으로 유명한 원효가 당나라 유학 길에 올랐다가 되돌아간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겁니다. 그때 원효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려고 했던 분이 의상이라는 스님입니다. 중도 하차한 원효와 달리 의상은 화엄종을 배우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고, 당나라로 가던 길에 그는 선묘라는 여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선묘라는 여인은 의상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만, 스님이었던 의상은 선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묘는 의상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대신해 의상의 학업과 안녕을 위해 기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길을 떠났던 의상이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되돌아가는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선묘와 만나게 되었던 그 지역을 경유하게 되었나 봅니다. 하지만 의상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엔, 이미 의상이 탄 배는 신라로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아쉬워하던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해 의상이 탄 배가 신라까지 무사히 귀국하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그 후 의상이 화엄종을 포교하기 위해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그곳에 살고 있던 이교도들이 방해를 했다고 합니다. 그때 용으로 변했던 선묘가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들렸던 바위에 '부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절의 이름도 부석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석사에 있는 바위는 지금도 공중에 떠 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정호승 시인이 있습니다. 이 분의 시 중에는 부석사에 관한 시가 있습니다. <그리운 부석사>라는 시입니다. 이 시의 시구 중에는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듣는 순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표현입니다. 사랑하던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죽은 여인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길, ‘아, 얼마나 사랑하면 죽어버릴까. 죽음의 무게만큼 진지하고 절실하게 매일매일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과 기다림은 어느 누구나 공감하고 향유하는 가치입니다. 제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의 사랑과 그리움은 우리의 가슴속에 새길 만한 숭고한 것입니다.

누구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11/28 대림절 아침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림절이란, 성탄절을 앞둔 4주 간의 시기를 말합니다. 4주 동안 교회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 4주의 시간은 희망과 기쁨의 시기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맞이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참회하며, 사랑하는 이를 향한 헌신을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시기도 했지만, 또한 마지막 때에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림의 시기에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또한 세상을 심판하고 구원하실 영광스러운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분과의 만남을 확신하지만, 그 시기와 때에 대해서는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진중한 자세로 주님을 기다릴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묻기를, “죽음의 무게까지 감당할 만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되물어야 합니다.” 죽음까지 불사를 그 사랑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자 또한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내 이웃을 향한 사랑일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나 자신에게 진지한 자세로 주님을 사랑하고 기다렸는지 묻게 됩니다. 죽음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기는커녕, 나 자신을 위해 다른 이를 희생시키며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끄럽고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그때 그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걸, 그때 홧김에 말하기보다 숨 한번 참고 넘어갈 걸...”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는다면 우리에겐 아직 남은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인에게는 과거가 있고, 모든 죄인에게는 미래가 있다”는 말이 있듯, 우리도 그렇게 어제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면 됩니다. 조금 더 사랑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사랑스러운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듯이, 또한 다시 오실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기대하듯이,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는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합시다. 과거와 미래의 주님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삶 한복판에 현존하고 계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기다립시다.

마음을 열고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올해 우리에게 주어진 1달 가까운 시간, 진지한 자세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겠노라 기도합시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의 길을 나에게 가르쳐 주시고,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나도 따라가게 해 주세요. 우리를 신실과 사랑으로 인도해 주세요.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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