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4편
1. (83) [지휘자에게. 기팃에 맞추어. 코라의 자손들. 시편]
2. 만군의 주님 당신의 거처가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3. 주님의 앞뜰을 그리워하며 이 몸은 여위어 갑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제 마음과 제 몸이 환성을 지릅니다. (...)
5. 행복합니다, 당신의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늘 당신을 찬양하리니. 셀라
6. 행복합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을 생각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
11.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습니다. 저의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
하루를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신학생이자 전도사였을 때보다 간절하게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영성’이다. 신학생일 때는 하루 온종일 책을 읽을 때가 많았다. 독서는 고고한 취미가 아니라, 나의 과업이었기 때문에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은 나의 일을 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그래서 오전이나 오후, 제 시간에 책을 보지 않으면 마음이 두근거리고 초조할 때가 많았다. 전도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도사는 설교 준비를 위해서라도 책 읽는 것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본문을 주해하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했고, 본문의 광맥이 흐르는 심층부로 나아가기 위해서 상상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또한 책을 읽어야 했다. 그렇게 영적 거장들의 책을 읽으며 비계 덩어리와 같이 비대해진 자아의 기름기를 제거해 나갈 수 있었고, 나아가 진귀한 음식과 음료를 시음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허둥지둥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녹초가 될 때가 많다. 육체는 피로하고, 정신은 곤고해진 상태가 된다. 어쩔 수 없이 아침마다 잠깐이나마 성경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마저 무너진다면 하루 종일 책을 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의 영적 고단함이 쉬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나마 영적 거장들의 기도와 신학을 섭식하는 식이요법을 통해 홀쪽해졌던 자아의 복부에, 다시금 정욕의 기름이 충만해져 가는 것만 같다. 기름기가 축적되어 배가 부르면 결국 정욕이 살아나고, 더 이상 민첩해지기에 두렵다.
그러다 보니 간절해지는 것이 ‘영성’이다. 나 혼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영성’의 필요를 누군가 나서서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교회이건, 목사이건 누군가 나를 영성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가 물을 마시게 해주면 좋으련만, 그것이 쉽지 않다. 코라의 자손들이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갈망하듯이, 내 영혼이 그렇게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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