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싫은 책과 문장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habiru 2024. 2. 8. 13:24

“17살 때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요리사와 웨이터로 일했어요. 대학에 꼭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좋아하는 요리사와 웨이터 일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식당에 취직했죠. 거기서 공부와 일을 병행했고요.”
(…)

인터뷰 중간에 P가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올해 22살인데 열쇠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어요.”
열쇠 수리공? 평생 식당 종업원으로 일해온 아버지 밑에서 자란 '출세'한 아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던 나는 솔직히 좀 의아했다. 그러나 P는 되레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아들이 판검사나 의사나 교수가 되길 바라지 않았어요. 열쇠수리공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하고 의미 있는 직업입니까?”
(…)

한 대기업 간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비로서 참 부끄럽다"라고 했다. 또 다른 나의 지인은 직업이 의사인데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죽는다. 그는 아들이 자신처럼 명문대를 나오지도 않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P는 고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도 자신이 식당 종업원이고 아들이 열쇠 수리공이라는 사실을 떳떳이 이야기한다고 했다. 아들이 자랑스러운 웨이터와 아들이 못마땅한 의사, 누가 더 행복할까? 이것은 부자 관계의 차이가 아니라 노동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8-9 중.




얼마 전,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주저 댔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고, 또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라고 사족을 붙여 얘기하고 싶었으나, 답변은 사지선다형으로 해야 했기에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나 스스로 기독교 신앙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고 싶을 뿐이었다. 이런 얘기를 다른 이들에게 했더니 괜히 걱정스러운 분위기에 싸였다.

위에서 발췌한 웨이터 P의 인터뷰는, 사실 덴마크의 어느 식당 웨이터 페테르텐의 이야기다. 다만, 웨이터 P가 박 씨 아저씨였으면 어땠을까? 그는 열에 하나 확률로 만날 수 있는 특별히 “좋은 아버지”로 칭찬받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의 평등과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편화된 덴마크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전혀 특별하지 않다고 한다.

불행은 어디에서 연유할까, 종교적 신앙의 부족함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쌀쌀맞을뿐더러 정직하지도 않다. 오연호 님은 덴마크가 행복지수 1위 국가가 될 수 있는 요인으로 6개 키워드를 뽑았다.

1. 자유(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
2. 안정(사회가 나를 보호해 준다),
3. 평등(남이 부럽지 않다),
4. 신뢰(세금이 아깝지 않다),
5. 이웃(의지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있다),
6. 환경(직장인의 35퍼센트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이와 다르게 우리나라에선,
1. 직업의 “자유”를 선택하자니 밥벌이가 고민이다.
2. 사회적 “안정”망이 열악한 현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만든다.
3. 어릴 때부터 등수를 매기는 능력제일주의 사회이다 보니 “평등”보다 경쟁이 우선이다.
4. 나라 곳간에 도둑놈이 많다는 사회적 “불신”이 팽배하다.
5. 옆집 “이웃”과 인사도 못 하는데, 사회적 자본이 축적될 리 없다.
6. 여전히 메가시티, 수도권 확장을 얘기하는 판국에 정부나 시민이나 “환경”보다 개발이 우선이다.

오연호 님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민들의 행복지수가 낮은 데엔 분명한 연유가 있다. 다는 아니어도 교회가 제대로 된 이웃이 될 수 있다면, 우린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소소한 희망을 품는다.

다정한 이웃,
#맛있는 교회 #제주교회 #제주시삼양동 #반려동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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