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종교 시장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가진 복음주의 사상을 팔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 호기롭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에겐 경쟁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남들과는 다른 브랜딩 상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새로운 방식의 카테고리 안에서 대안적인 목회를 한다고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뻔한 경우가 많다. 외형적인 면에선 신선한 매력이 넘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다. 기존 교회에 대한 비판은 있으나 구체적인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부패한 교회, 타락한 목회자 덕분에 반사이익을 얻는 것이다. 건설적인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토대가 되는 텍스트(성서, 교회전통)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한데, 시대적 흐름과 유행에 민감할 뿐이다. 때문에 문화 사역의 실체, 문화 사역자의 전문성은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힙한 음악, 영상미는 오래가지 않는다. 예전에 문화 사역을 한다는 사역자 C모 목사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홍대에서 사역한다는 창바지를 입은 목사, 소년을 떠오르게 하는 미성의 목소리, 세련된 듯한 멘트. 모든 것이 좋아 보였고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의 강의는 망상에 가까웠다. 그 점에서 제임스 K. A. 스미스의 이야기는 몇 번이고 다시 새겨들어야 하겠다. 그나저나 오래전 읽었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다시 한번 읽어야 할 듯하다. 읽어야 할 책은 많으나 나는 게으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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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복음주의자들은 교회라는 협소한 공간을 넘어서서 창의성과 발명, 혁신에 관심 있는 열정적인 사회적 기업가들이다. 또한 이들은 정의와 억압, 사회적 무질서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큰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은 깨진 세상을 “회복하기” 원한다. 세상을 새롭게 하는 동시에 세상을 바로잡기 원한다. (…) 다른 한편으로, 복음주의는 여전히 거의 무제한의 종교혁신의 온상으로, 급변하는 현대 영성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미국의 식민지 시대만큼이나 오래된) 복음주의 영성의 기업가적 독립성 때문에 아직도 제도적 지원이 거의 필요 없는, 온갖 종류의 신생 기업 같은 회중이 생겨날 수 있는 상황이다. 점점 더 전문화되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이들 신생 교회들은 예전의 형식이나 제도적 유산에 의존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들 중 다수는 “교회를 재발명하겠다”는 욕망을 자신 있게 밝힌다. (…) 우리의 상상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 정서적으로 몰입함으로써 회복되고 재조정되고 재정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목적 지향적이며 역사적인 기독교 예배에서 이뤄진다. 우리에게는 기독교 예배가 상상력의 저장소임을-그리고 기준이 되는 이 이야기가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정서적으로 전달되어야 함을-이해하는 목회자와 사제와 예배 인도자(와 교사와 청소년 사역자와 대학 교수)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이 중요하다. 달리 말하자면, 기독교의 예전적 전통을 문화적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
제임스 K. A. 스미스, <습관이 영성이다(You Are What You Love)>, 박세혁 역, 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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