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계속 목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2주 전에는 집 근처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기다란 내시경이 코 속으로 들어갔다. 거북스러웠지만 참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성대를 보고 말하기를, 오른쪽의 성대가 움직이지 않아 쉰 목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지만, 1주 뒤에도 상태가 지속된다면 정밀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최근에 과로를 했던지, 혹은 미세먼지(?)의 영향이던지, 집이 건조해서 생긴 결과려니 했다.
그런데 보름이 지났는데도 목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는 부모님과 함께 내과에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증상을 묻고, 목과 눈, 손을 유심히 보더니 초음파를 찍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피 검사를 위해 채혈을 하고, 초음파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은 젤을 목에 넉넉히 바르더니 차가운 기계를 목에 가져다 대었다.
"결혼은 했어요?" / "아니요." / "보호자님 들어오세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잠깐 이상한 뉘앙스의 대화들이 오갔다. 그리고 말하기를, 갑상선 양쪽에 혹이 2개 있는데 크기는 7.7mm라고 했다. 그리고 대개 1cm 이하의 혹은 조직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모양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물어봤더니 좋지 않을 경우 암일 수 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당황했다. 그래도 아직 크기가 작아 조직검사까지 받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단, 6개월 뒤에 다시 촬영를 하는 것이 좋다고 빼먹지 않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환자가 원할 경우, 당장에라도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암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사실 나의 당황스러움보다는 부모님의 당황스러움이 더욱 컸던 것 같다. 괜히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다. 그렇게 말로 표현하기엔 어려운 감정들의 스쳐 지나감을 느끼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카페에 가서 차와 팥빙수를 먹으면서 말이다. 평소 누나의 퉁명스러운 전화상의 목소리도,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며 괜찮을 것이라는 부드러운 위로의 목소리로 들렸다. 아버지는 저녁식사로 오리고기를 사 주셨다. 계속 부모님의 눈치가 보였다. 나는 괜찮은데 부모님께 근심을 드려 불효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식당 옆 테이블의 요란한 대화와 소음 속에서 오로지 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는 것 같았다. 나는 만약 지금 생을 마치더라도 행복했었던가. 여러 추억들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했던 외식 이야기, 소소한 일화들이 기억났다. 되돌아보면 만족스럽지 않았던 사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지난 시절들이 행복했다고 말할 용기가 생겼다. 얼마 전, 읽었던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를 떠올리며 부모님께 불효를 할 수 없다, 그리고 행복한 이야기들을 이어가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요동치 않고 꿋꿋이 전진하리라 되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