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말이 제 마음에 넘쳐흘러 임금님께 제 노래를 읊어 드립니다.”
시편 45편은 임금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것은 임금 앞에 바짝 엎드린 수동적인 예절에 한하지 않으며 자발적인 공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뭇 사람들로부터 우러러 존경을 받으며 사랑을 받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알파와 오메가가 아닐까. 라르쉬 공동체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방문자들에게 묻는다고 한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십니까?”
가벼이 듣고 흘릴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단 한 가지만을 묻는 이 질문에는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된 진리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 사막의 은수자들이 고독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까닭은 사랑받는 행복을 초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사랑 받음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내게는 “입술의 우아함”이나 “용사”와 같은 힘, “불의를 미워하는 정의”가 없다.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다른 동료들보다 나를 기뻐하실는지 확신할 수 없다. 사랑받기엔 부족한 외모와 성품, 행실이 괴롭다. 아름다운 풍모도 고결한 성품, 어떤 것도 자신할 수 없다. 그러기에 청원한다. 왕이시여, 저를 가엾게 여기소서. 저를 어여삐 여겨 주실 만한 어떤 이유도 없지마는, 그리하여 주신다면 제가 왕을 사랑하겠나이다. 왕을 존경하겠나이다. 나를 인간으로서 살도록, 나를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