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런 세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1. 현실주의 노선: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ex. 사두개파)
- 원하든 그렇지 않든 고통스런 지금의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인 방법을 취해 달성가능한 목표 안에 만족하며 적당한 타협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더 전면적인 변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시간을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2. 정의로운 혁명적 폭력: 급진적 폭력적인 방법을 취해서 사회를 변화시킴(ex. 열심당)
- 고통스런 현실을 타개할 방법으로는 사회운동이 필요하다. 사회 변혁을 위해 수반되는 희생은 불가피하다. 유혈 혁명을 통해서라도 사회 변혁의 대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3. 현실 도피: 광야에서의 은둔자적 생활(ex. 에세네파)
- 이상향과 현실의 간극은 너무 크다. 차라리 체념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피한다면 행복할 수 있다.
4. 적합한 종교: 현실도피적이지도 않지만 분리적인 삶을 유지(ex. 바리새파)
- 영적인 것과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은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구분만 잘 한다면 이상적이며 현실적인 삶이 가능하다.
Q.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떤 방안을 택해야 하는가? 이스라엘의 소명은 무엇인가?
성서 이야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브라함은 그 당시 세계의 문화적, 종교적 수도였던 갈대아를 떠나 알지도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언제,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올지, 아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일지의 여부도 몰랐다. 하지만, 불가해한 약속을 따르고자 일어섰을 때, 그를 통해 열방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 반응으로 아브라함은 전혀 다른 삶, 문명화되고 종교적인 민족과 다른 삶, 도시민이든 유목민이든, 그들 가운데서 순례의 길을 떠나 전혀 다른 삶을 살기로 하나님과 약속했다.
이 바위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고
이 언덕에서 굽어보니,
아, 저 백성, 남과 섞여 살지 않는 민족,
과연 만방에 견줄 데 없는 민족이구나. 민 23:9(공동번역)
그러나 현실과의 괴리감이란 참으로 컸다!
이것이 근원적 혁명이다. 상식에서 벗어난 가치관과 그것들을 육화시키는 일관된 방식을 가진 독특한 공동체의 창조! 오늘날 그것은 지하운동이나 정당, 침투 팀이나 세포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회학자들은 그것을 의도적 공동체intentional community라고 부른다. 그들은 '히브리인'이라고 불렸는데, 본래 "강을 건넌 사람들"을 뜻하는 호칭이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항상 하나님의 언약을 지킨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변함 없이 신실하셨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 성취의 도구가 될 가능성이 점점 희미해지는 듯했으나, 그의 종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이 받을 의에 대한 언약은 매년 반복되고, 강화되고, 명백해졌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성취하러 오신 언약이라고 그리스도인들은 믿는다.
- 존 요더, "근원적 혁명", 41-5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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