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니에, 그는 내게 존경할 만한 목회자이자 선생님이었다.
예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건만 나는 그것을 고민해야 했다. 전도사로 사역하던 교회가 분열되는 와중에 전임 목회자로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안교회의 모델로 평가받던 공동체가 조각났을 때, 교회를 향한 낭만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때깔 고왔던 사랑과 섬김은 온데간데 없고,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고 서로에게 죄를 전가시키던 교회를 보며 나는 전임 목회자가 되기를 고민했다. 그때, “건강한”이라는 형용사가 교회에 적합한 꾸밈말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수긍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 건강한 교회란 없다.” 그렇게 나는 일종의 현실주의자로 전향한 셈이다.
그럼에도 교회를 향한 갈증은 있었다. 그때 나는 장 바니에를 통해 조금이나마 교회를 향한 목마름을 채울 수 있었다. 그가 설립한 라르슈(L' Arche), 방주라는 이름의 공동체는 말 그대로 “안식”이었다. 고개를 둘러보면 좋은 뜻과 목적을 가진 공동체들이 참 많다. 그러나 대다수는 당위성이 지배하는 공동체들뿐이고, 잠재태로서의 현실에 충실한 곳은 소수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웃거리는 것 자체에 소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라르슈는 미래에 도달하게 될 당위의 공동체가 아닌, 현재에 충실한 공동체가 되라고 내게 도전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가 주인이 된 공동체를 제시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라르슈에서 비전이 이끄는 추진력이 아닌, 바른 됨됨이 안에서 우러나는 쉼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장 바니에에게 깊은 존경과 사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장 바니에의 비위가 밝혀진 마당에 나는 무얼 말할 수 있을까.
그를 향한 아쉬운 마음 한 줌, 피해자를 향한 위로의 마음 한 줌, 나를 위한 서글픈 마음 한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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