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안수

카타콤 장로교회

habiru 2023. 6. 20. 11:37

목사 안수 이후, 교회 개척을 준비하고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한 유진 피터슨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재미있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교회 개척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는 듯하다.

십자군과 같이 기독교 진리가 없는 곳에 십자가를 꽂고, 정복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내게 있어서 교회 개척과 성장을 위해 목회 컨셉, 포지셔닝, 목회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적용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를 잉태하시고, 그의 자궁 안에서 교회를 자라나게 하시며,
교회로서의 소명을 할 수 있게 하신다는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면,
교회의 존재는 금방 퇴색되어 버릴 것이다.

그의 말처럼 누가복음에서 에수님의 이야기가 사도행전에서는 교회의 이야기로 이어지듯,
교회로 잉태되는 교회 개척의 이야기에 참여하고 싶다.

—-

  믿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성경을 읽었는데도 누가가 두 개의 탄생 이야기를 배치한 방식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누가는 거의 똑같은 병렬 구조로 예수님의 탄생과 교회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누가복음 1-2장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이고, 사도행전 1-2장은 우리의 구원 공동체인 교회의 탄생 이야기다.
  나를 비롯해서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일 만한 상상력의 틀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줄 알았다. 어쨌거나 우리는 서로를 알아 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중에는 조직을 편성하고, 재정을 관리하고, 교회를 건축하는 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일 아침에 접이의자를 펼쳐 놓을 사람이 필요했는데, 가까이에 사는 프레드가 자원했다. 매우 사교적인 베아트리스는 예배 후에 커피를 내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이러한 일들을 하면서도, 도대체 무엇이 교회를 만드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누구나 한때는 태아였지만 자신이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배우고 있었다.
  우선, 사도행전은 교회의 탄생과 관련된 모든 일을 설영이 하시는 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사도행전에서는 접이의자를 펴는 일이나 커피는 끓이는 일이나 재정 보고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었다.
  메릴랜드에 있는 이 지하실에서, 이 시멘트 방공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과 마찬가지로 ‘성령이 잉태케 하신’ 일로 이해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었다. (…) 이해는 서서히 점진적으로 왔다. 아마도 내가 가장 느리게 그 사실을 소화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회중을 조직하는 책임을 맡았고 그 일로 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 입장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적을 주셨을 때와 똑같은 표시를 회중의 기적에도 주셨다. 바로 비둘기의 강림이다. 성령이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마울에 사는 마리아의 자궁으로 내려가셨다. 30년 정도 후 같은 성령이 마리아를 포함하여 예수님을 따르던 남자와 여자들의 집단적 자궁으로 내려가셨다. 첫 번째 잉태는 예수님을 낳았고, 두 번째 잉태는 교회를 낳았다. (…)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처녀인 마리아의 자궁에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잘 믿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카타콤 자궁 안에 교회가 잉태되고 있고, 그 교회가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잘 믿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재능 있는 남자와 여자들이 모인 엘리트 그룹으로 형성된 교회를 상상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
  결국 우리는 이야기에 설복당했다. 하나님이 교회를 시작하실 때는 아무런 이름도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시작하신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성령은 그렇게 일하신다. 스가랴와 엘리사벳, 마리아와 요셉, 안나와 시므온처럼, 이 세상에 우리의 구원자를 보내시기 위해서 성령이 처음 데리고 일하신 사람들이 그랬다. 그렇다면 구원 공동체인 교회를, 이 회중을 형성할 때 성령이 전략을 바꾸실 이유는 없다.
  누가는 세심한 이야기꾼이다. 누가가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과 사도행전에서 교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우리는 카타콤에서 일어나는 일과 우리 자신을 연결시킬 수 있었다.

- 유진 피터슨, <유진 피터슨>, 양혜원 역(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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