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안수

편지

habiru 2023. 8. 29. 15:19

30대 중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5할 이상이다. 그토록 나는 인생 밑천이 될 경험과 사유의 깊이가 첨벙첨벙할 풀장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지만, 인간관계가 옹졸한 탓에 여태 선생님으로 부르는 분이 적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몇몇 선생님들은 내겐 ‘학생을 가르치는 분’ 이상으로 남아 있는 분이 있다. 그중 김병권 교수님은 지금껏 연락을 주고받는 선생님 중 한 분이다. 졸업논문 지도와 결혼식 주례까지 부탁드렸던 교수님은, 내게는 본받을 점이 많고 덕이 높은 분으로서의 ‘선생님’이다. ‘교권 수호’라는 구호가 더는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지만, 조언과 가르침을 부탁드릴 선생님이 사라진 시절이 아직은 너무나도 낯설다.

결혼식 주례를 앞두고, 김병권 선생님께서는 아내와 나에게 결혼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과 결혼 이후의 바람을 각각 편지를 써서 보내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주례를 대신하셨다. 우리 부부의 편지, 주례자의 편지, 그리고 (축가를 대신한) 친구들의 편지, 우리의 결혼식에는 몇 통의 편지가 오고 갔다.

대화와 비교해 편지글은 언제나 신중하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정제된 언어와 말이 나온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은 편지를 사랑하시는 것 같다. 언젠가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엮어 작은 책자를 만드셨고, 그걸 몇몇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신 적이 있다. 지난 26일에도 목사 안수를 축하한다며, 이번에는 당신의 부인에게 보내셨던 편지를 엮어 선물로 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를 ‘부부’로 믿는 내게 그 편지는 소중한 선물이다.

30편의 편지 중 절반 정도를 읽으며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태도와 우정을 나누는 법, 가정과 부부생활의 지혜가 집약된 엑기스를 보는 듯하다. 편지를 통해 선생님 부부의 에토스가 우리 부부가 본받고 따를 만한 에토스로 소화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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