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짱이란 역경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경험으로 보아서는 언제나 인간에게 자극제가 된다. 나는 배짱이 있는 사람이 좋다. 즉, 어려움에 단련된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사실이다. 그들은 현실적이며, 쉽게 겁먹지 않으며, 어린애 같은 요구를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험난한 삶의 요인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자질을 만들어낸다. 돌아다보면 빈곤은 도덕성을 낳는 것 같았다. 가난하면 자기희생적이 되고 불평이 없어지며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개성적이고 용감해진다. 그런데 풍요의 시대라 일컫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현실화된 지금, 배짱인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점점 사라지고 있는 옛 미덕에 불과할까? 그게 실제로 사라져버린다면 몹시 슬프고도 놀랄 일임에 틀림없다. 응석받이 아이는 고생을 모르기 때문에 배짱이 없다. 나약한 소년은 폭력을 쓸 때만 자신감을 갖게 되므로 배짱이 필요하고 이것이 없으면 아쉬워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화를 견뎌내야 하고, 부모들 역시 애들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두둑한 배짱이 필요하다.
- 플로리다 피어 스콧 맥스웰, <늙음, 열정과 사실 사이>, “사랑, 죽음, 그리고 현대성”,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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