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네덜란드 친구 마리아와 루이 테르스테흐Louis Tersteeg가 트롤리에 와서 반나절을 보내고 갔다. 라 페름에서 점심을 먹고 로라투아르에서 짤막하게 기도했으며, 마담 바니에를 잠시 만났고, 라 포레스티에르 식구들과 차를 마셨으며, 공동체 전체가 드리는 예배에 참석한 뒤에, 라르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쉼터, 르 발 플로리Le Val Fleuri에서 저녁을 먹었다.
마리아와 루이는 둘 다 오늘 보고 들은 일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라르쉬가 여러 면에서 놀라웠던 모양이다. 다시 콩피에뉴Compiegne으로 나갔을 때, 루이가 말했다. "성만찬을 도왔던 세 분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겁니다." 마리아도 동감이었다. 하얀 예복을 입은 장애인 셋이 제단 곁에서 토마 신부를 도와 예물을 준비하는 모습은 오후에 보았던 일들에 담긴 참뜻을 압축해 드러내는 것 같더라고 했다.
"톨스토이 소설에 나오는 세 수도사가 생각났어요." 루이가 말했다. 이야기를 되살려보자면 이렇다.
머나먼 섬에 러시아 수도사 셋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주교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그 섬으로 심방을 가기로 작정했다. 도착해서 살펴보니, 셋 다 주기도문조차 모르는 형편이었다. 주교는 거기에 머무는 내내 열심히 주기도문을 가르쳐주고는 심방결과에 만족하며 돌아섰다. 그런데 배가 섬을 떠나 너른 바다로 나서는 순간, 문득 세 수도사가 물 위를 걷는 게 눈에 들어왔다. 실은, 줄달음쳐 배를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꽁무니를 따라잡은 이들이 소리쳤다. "사랑하는 신부님! 가르쳐주신 기도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벌어진 장면과 들리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진 주교가 물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럼, 그대들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 거요?" 수도사들이 대답했다. "그냥 '여기에 저희 셋이 있고, 거기 세 분 하나님이 계시는 걸 아오니,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라고 말씀드릴 뿐입니다." 한없이 거룩하고 소박한 모습에 눌린 주교는 간신히 말했다. "섬으로 돌아가서 다들 평안히 지내시구려."
장애인 셋이 제단 곁에서 예배를 돕는 걸 보자마자, 루이의 머리에는 이 소설이 떠올랐다. 톨스토이가 그려낸 세 수도자처럼, 이들 역시 많은 걸 기억할 수는 없어도 물 위를 걸을 만큼 거룩한 건 아닐까? 라르쉬에 관해 많은 걸 시사하는 이야기다.
- 헨리 나우웬,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 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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