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싫은 책과 문장

신앙의 네 가지 의미

habiru 2019. 10. 14. 17:35

동의로서의 신앙(faith as assensus)

  라틴어 ‘아센수스’(assensus)의 뜻은 ‘동의’(意)로서 그에 가장 가까운 영어 단어는 assent이다. 이것은 믿음 조항으로서의 신앙(faith as belief), 곧 어떤 명제에 대해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서, 어떤 주장이나 선언이 참되다고 믿는 것을 뜻한다. 때때로 신앙에 대한 명제적 이해라고 불리는 이런 신앙 이해는 오늘날 교회 안과 밖에서 신앙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의미이다. 


신뢰로서의 신앙(faith as fiducia)

   라틴어 ‘피두시아’(fiducia)에 가까운 영어는 없다. 이 라틴어와 가장 가까운 영어 fidiciary(신용에 의한)는 우리에게 별로 적합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라틴어를 “신뢰”(trust)로 번역하여,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것으로 설명하겠다. 중요한 점은 이런 신앙 이해가 하나님에 관한 몇 가지 선언들이 진리라고 신뢰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것이라면 ‘동의’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피두시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뜻한다. 


충실함으로서의 신앙(faith as fidelitas)

  신앙의 첫 번째 의미를 듯하는 라틴어 ‘아센수스’(assensus)와 마찬가지로 ‘피델리타스’(fidelitas)의 뜻 역시 그에 가장 가까운 영어 단어 fidelity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충실함’으로서의 신앙이다. 이것은 “신실함”으로서의 신앙이다.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충실한 것이다. 이것은 헌신적인 인간관계에서 충실함이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즉 우리는 배우자나 파트너에게 충실하다(혹은 충실하지 않는다). 충실함으로서의 신앙은 충성, 전념, 자기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헌신하는 것, 즉 “가슴”의 헌신을 뜻한다.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faith as visio)

  라틴어 ‘비시오’(visio)와 가장 가까운 영어 vision이 뜻하는 것처럼, 이것은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faith as a way of seeing)이다. 특히 이것은 삶의 현실 전체를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 곧 인생의 “궁극적인 무대”(臺)를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이다.나는 신앙을 이렇게 이해하는 방법의 싹을 20세기 중엽의 신학자 리처드 니버의 <책임적 자아>에서 배웠다. 그 책에서. 니버는 우리가 인생의 궁극적인 무대 전체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그 전체를 보는 방식이 우리가 삶에 대해 응답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책제목에서 ‘책임적인’(responsible) 자기라는 말은 특별히 의무를 지키거나 양식적인 자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는(responding) 자기를 가리킨다. 


  우리는 흔히 ‘크레도’를 “나는 믿습니다”라고 번역한다. 현대인들 대부분이 “나는 믿습니다”라는 말을 “나는 동의합니다”라는 뜻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 신조들을 고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내가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열 개를 꼽아봅다면, “그래서 우리는 그 신조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는 질문이 포함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나는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그 신조에 나오는 각각의 선언들의 문자적인 진리에 대해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의”와 문자주의는 흔히 오늘날 신자들에게나 불신자들에게나 마찬가지로 하나로 결부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크레도’는 “나는 다음과 같은 선언들의 문자적-사실적 진리에 동의합니다”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라틴어는 “나의 심장을 바칩니다”(I give my heart to)라는 뜻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심장은 자기의 가장 깊은 차원으로서 지성보다 더 깊은 차원이다. 자신의 심장을 바치는 것으로서 ‘크레도’는 “나는 충성하겠습니다,” “나는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뜻이다. (...) 가장 간단히 말해서 “믿는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영어에서 “믿는다”(believe)와 “사랑한다’(belove)는 서로 연관된 말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 마커스 보그, <기독교의 심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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