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자료/묵상

믿음, 시간의 퇴적물

habiru 2019. 6. 22. 09:57

 “하느님께서 우리의 피신처와 힘이 되시어 어려울 때마다 늘 도우셨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 땅이 뒤흔들린다 해도 산들이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 든다 해도 바닷물이 우짖으며 소용돌이치고 그 위력에 산들이 떤다 해도. 셀라 강이 있어 그 줄기들이 하느님의 도성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하느님께서 그 안에 계시니 흔들리지 않네. 하느님께서 동틀 녘에 구해 주시네.” (시편 46:1-6)

  위대한 신학자이자 논쟁가인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라는 진리를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이신칭의’의 벅찬 진리가 소시민적 신앙을 영위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유의미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에게는 루터와 같은 ‘죄의식’이 없기 때문이리라. 루터를 괴롭히던 ‘죄의식’을, 영적 감수성이 무딘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실은 ‘믿음’은 천상의 것이라 해도 될 만큼 추상적이다. 보통 교회 내에서 통용되는 ‘믿음’의 대상과 소유에 대해서는 무지할 따름이다. 

  하지만 어쩌면 매우 단순하게 믿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어려울 때마다 늘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신뢰에 있다. 이 신뢰는 막연한 기대와 소망, 혹은 선험적인 지식에 있지 않다. 신뢰는 경험과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축적물과 같다. 신뢰는 한두 번의 바람과 희망으로는 대체될 수 없는 시간의 산물이다. 이를 통해 마침내 하나님께서 창공의 어두움을 뚫고 동틀 녘에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다. 

  한 겨울 4-6시 위병소 근무를 설 때, 서늘하다 못해 시린 공기가 군화 가죽을 뚫고 침노해 오던 것을 느꼈다. 언제 해가 뜰 것인지 기다렸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곧 해가 뜰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2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경험의 산물이었다. 반드시 해가 뜰 것이다!

  시편 기자의 믿음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이는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상들을 출애굽에서 건져 내셨던 하나님, 바벨론의 유배 생활에서 포로 귀환을 이끄셨던 하나님, 지속된 사탄의 체제로부터 긴 유배로부터 값을 치르셨던 하나님, 신앙의 선배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믿음의 시작이 아닐런가 싶다. 어쩌면 ‘믿음’은 천상의 것이 아니라 지상의 것에 가까울 것 같다. 그것은 관념론에 귀속되지 않고, 경험론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도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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