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자료/묵상

사죄(謝罪)에 선행하는 속죄(贖罪)

habiru 2019. 8. 30. 11:25

시편 103편

1. (102) [다윗]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들아,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여라. 

2.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 

3.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분.

4.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로 관을 씌워 주시는 분.

5. 그분께서 네 한평생을 복으로 채워 주시어 네 젊음이 독수리처럼 새로워지는구나. 

 

  지혜자는 사람이 무언가에 노력한들, 사건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노력에 따른 대가와 보상은 경험론적인 확률에 의한 인과에 가까운 것일 뿐 확실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103편의 기도는 사람의 한계를 인정하는 기도로 볼 수 있다. 이 기도에는 정직함이 있다. 사람의 한계를 인정하는 정직함, 그리고 그에 대한 관찰이 103편의 시에 드러나 있다.

  103편의 작가 다윗은 사람에게 우연히 강림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노래한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사람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언제나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편에 의해 주도된다. 얼핏 회개는 사람의 주도적, 능동적 행위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기로, 용서 없이 죄 사함이 없다고들 오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며 오만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사람의 회개보다 선행하기 때문이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선행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지혜가 드러난다.   

  그래서 작가는 잘못된 관계를 타개하려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미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회개는 이차적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선행하시는 용서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사람은 늘 사죄와 속죄가 필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우연적이다. 속죄는 사죄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물이 아닌 것이다. 어떻게 보면 속죄는 사람의 입장에서 해프닝에 가깝다. 하나님의 의도적인 해프닝, 하나님의 연출이다. 따라서 사람은 속죄를 위한 사죄의 무능성을 인정해야 된다. 그것이 작가가 전하는 사람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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