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선악이란 무엇인가?

habiru 2016. 6. 7. 22:42

나는 평범한 기독교 배경의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현실의 문제에 있어서 늘 피안의 세계로 도피하고픈 욕망 속에 있었다. 정의, 사랑과 같은 종교적 언어로 치환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특별히 "선과 악"에 관한 담론에서는 자연스럽게 알레고리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짙었다. 

어릴 때, 절대 선(善)과 절대 악(惡)은 형이상의 세계에서 늘 충돌하고 있었다. 절대 선인 하나님과 절대 악인 사탄의 싸움 구도는 종교 담론만 아닌,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근본적인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적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들을 마주할 때는 악으로 재단하고 그것을 뭉개려고 했다. 반대로 좋은 일들을 대면할 때는 선으로 단정 짓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철학을 공부하며 사변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의" 말고, 현실에서 있음직한 "정의"의 문제를 보게 되었다. 목적론적 윤리와 의무론적 윤리의 충돌에서 어느 것 하나도 시비를 가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릴 때는 사사(재판관)가 된 것 마냥 선악을 판별하는 자리에 오만하게 앉아 있었다면, 이후로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동시에 잘못된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호흡곤란 같은 존재론적 고민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과 조커의 싸움이 선악의 싸움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싸움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도 이 때였다. 한나 아렌트의 일상적인 악에 대한 고발을 알게 된 것도 이 때였다. 어쩌면 "선악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나로 하여금 윤리를 공부하려는 길로 인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견이지만 종교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유아적 사고로 선악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자주 발견되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특별히 이것은 기독교 전통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것 같다. 심지어 상당한 수준의 학문적 토대를 쌓으신 분들에게서도 이러한 류의 경향성이 보이는 것 같다. 그 분들의 말씀에 일견 동의가 되지만 당혹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 문제란 매우 간단한 것 같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정경은 66권의 엇갈린 진술 속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언서에서는 아주 단순해 보이는 정의의 문제가 지혜 문학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정의만 아니라 여러 문제에서 그렇다. 성경은 모순으로 보이는 간-텍스트를 상호교차 하도록 독자들을 이끄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신학으로만 무장된 목회자가 되고 싶지 않다. 일상 속에서 선행과 악행의 경계를 넘나들며 모호한 줄타기를 하는 구도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