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싫은 책과 문장

닫혀 있는 마음

habiru 2019. 11. 16. 13:16


  닫혀진 마음 상태는 그 굳어진 정도가 가지각색이다. 모든 마음들이 다 똑같은 정도로 강팍한 것은 아니다. 심한 경우에는 강팍한 마음이 폭력, 잔인성, 교만, 완력으로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탐욕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보다 가벼운 상태, 덜 강팍한 상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폭력의 덜 강팍한 형태는 누구에 대해서나 심판하는 마음 자세이며, 잔인성의 덜 강팍한 형태는 무감각이며, 교만의 덜 강팍한 형태는 형태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이며,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탐욕의 덜 강팍한 형태는 일상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이다.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열게 만들며,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닫혀지게 만드는지를 성찰하는 것은 흥미롭다. 어떤 날에는 나의 마음이 다른 날들보다 더 열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 하루 동안에도, 어느 순간에는 나의 마음이 보다 열려 있거나 보다 닫혀 있거나 한다. 때로는 나의 마음이 피로, 염려, 혹은 분주함 때문에 닫혀진다. 내가 심술이 나거나 자기에 사로잡혀 있을 때, 세상이 무미건조하게 보일 때, 내 머리 속에서 나 자신이나 타인들에 대한 비판적인 음성이 강할 때는 언제나 나의 마음이 닫혀진다. 내가 수퍼마켓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면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시무룩하게 보일 때, 나는 내 마음이 닫혀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의 마음이 닫혀 있을 때는 우리가 껍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새의 알처럼, 그 껍질 속의 생명이 온전한 생명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그 껍질을 깨고 나올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마음의 부화(孵化)"다. 그리고 만일에 우리의 마음이 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는다. 마음이 부화하는 것, 곧 자아가 하나님, 신성함에 대해 열리는 것은 기독교인의 삶의 개인적 차원에 대한 포괄적 이미지다. 

  이처럼 열린 마음, 새로운 심장, 순수한 마음에 대한 갈망, 약속, 그리고 명령은 성서 전체에 걸쳐 흐르고 있다. 


"아, 하나님, 내 속에 깨긋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시 51:10)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겔 18:31)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의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겔 36:26; 참조 11:19).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마음이 어떻게 열리게 되는가? 이 물음에 대한 성서의 대답은 하나님의 영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얇은 곳(thin place)을 통해 활동하신다. 

- 마커스 보그, "얇은 곳," <기독교의 심장>, 237-9. 


  어제는 운전을 하다가 이유 없이 짜증이 밀려왔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분주해진 까닭이다. 사실 그렇게 분주할 필요도 없었지만, 부랴부랴 몸과 마음이 정신없이 허공을 떠돌아다녔다. 나를 추월하는 검은 승용차가 미웠고, 앞에서 저속 주행하는 흰색 승합차에 짜증을 부렸다. 심하게 마음이 닫혀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이 병들어 있다 보니, 사람이 미워졌다. 필요 없이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던 것이다. 사실 요 며칠간 마음이 닫혀 있었다. 마음의 여유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으며, 영혼의 양식을 찾아 갈망하는 것도 사라졌다. 그러자 피로감이 몰려왔고 몸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다. 몸이 마음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어떻게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이 곤고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나는 진정 덕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진정 나는 영혼을 단련하는 수도자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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