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배필"로 번역된 에제르 케네그도(עזר כנגדו)는, "마주본 존재로부터의 구원" 정도로 직역될 수 있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부부란 관계를 지향하고, 관계를 통해 구원받는 존재인가 보다.
1) 마주함: 서로 마주보기 위해서는 둘은 서로 다른 높낮이를 낮춰야 한다. 둘은 자기 자신의 상황을 조정해 의도적으로 평등하게 만들어야 마주볼 수 있다. 관계의 평등성은 자발적으로 가능하다. 서로에 대한 헌신과 내어줌, 그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희생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발성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상호 평등은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 없이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2) 구원: 한편 부부 관계는 평등을 넘어 복종으로 내달리게 된다. 그것은 굴종 아닌 복종이다. 구원은 거추장스러운 무언가가 아닌 필요성에 가깝다. 따라서 마주보는 존재로부터의 구원이란, 메시아와 같은 타자로 귀결된다. 마주보는 존재를 통해 나는 구원받는다. 단, 구원을 받는 과정은 알다시피 고통이 수반된다. 그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구원과 복종, 복종과 구원은 선후관계 없이 연결되어 있다.
부부의 신비는 무한으로 초월해 있는 듯하다. 이해한다고 하기엔 결사코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가깝다. 그러므로 배우기보단 받아들임에 가까울 것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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