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자료/묵상

정화된 언어로 말하게 하소서.

habiru 2019. 9. 20. 08:26

시편 111편

1. (110) 할렐루야! (알렙) 내 마음 다하여 주님을 찬송하리라, (베트) 올곧은 이들의 모임에서, 집회에서.

2. (기멜) 주님께서 하신 일들 크기도 하시어 (달렛) 그것들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깨친다. 

 

  예전에 예레미야애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레미야애가의 문체를 설명한답시고 답관체로 된 시를 창작해본 적이 있다. 설교문 작성에 수고와 열정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문을 만드는 중에도 그에 못잖은 힘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설교문 작성보다 훨씬 품을 팔아야만 했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단어를 형성하고, 문장을 만드는 것에는 늘 힘이 따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들로 문단을 구성하고 각론을 만드는 것을 장인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산문보다 운문을 창작하는 것에는 절제와 여백의 얼이 담겨야 한다. 짧은 시 안는 작가 혹은 화자의 감정이 오롯이 담겨 있어야 하면서도, 감정이 절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현승 시인이 “나의 가장 나아종 것은 이것뿐!”이라고 하면서 눈물의 순수성을 말하듯, 시는 그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뚫린 입으로 나불대며 살아 가지만, 이 말들은 중심부를 맴돌 뿐 중심부로 돌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저 말들이 공허한 말로 느껴지는 까닭이 그렇다. 그리고 허공에 대고 외치듯 중얼대는 설교들과 기도들이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편의 시인은 자신의 혼을 쏟아 A에서부터 Z까지, 정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조각한다. 그러나 나의 말에는 그와 같은 진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사려깊음이 없다. 의미 없이 지껄이는 말은 의미없는 독백일 뿐이다. 이는 주변부에 그친 말이자 상호 간에 나누는 의미있는 대화가 아니다. 부끄럽게도 나의 말들이 대부분 그렇다. 주님께서 나의 말과 언어를 정화시켜 주셨으면, 오늘 하루 내가 하는 말들이 의미없는 말들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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