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9편
5. 주 우리 하느님을 높이 받들어라. 그분의 발판 앞에 엎드려라. 그분께서는 거룩하시다.
6. 모세와 아론은 그분 사제들 가운데에, 사무엘은 그분 이름을 부르는 이들 가운데에 있네.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그들에게 친히 응답하셨네.
7. 구름 기둥 안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자 그들은 그분의 법과 그분께서 내리신 명령을 지켰네.
시인은 제사장이었던 모세와 아론을 하나님의 존전 앞에 서 있는 사제로 받아들인다. 그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원초적 제사는 가능했지만, 하나님께 드릴 제사법은 구체적으로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과 땅을 중재하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미스바의 대각성을 기획했던 이였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를 상징하는 자로 받아들인다.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아가는 동안 모세와 아론은 모범이 된다.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소통할 창구가 마련되고, 영광의 현현을 보게 된다. 종교개혁기 이후로 ‘만인 제사장’이라는 불가항력의 도그마가 대두되었지만, 여전히 평범한 인간에게는 제사장적 존재가 필요하다. 매일이 주일 같으면 좋으련만, 인간은 여전히 월요일부터 토요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짧지만 매 주일의 예배는 하나님 나라의 행복과 기쁨을 선취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상징이자 실체이다. 그러기에 예배를 집전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그러나 순례의 여정은 고단하다. 순례지(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도중에 순례지와 비견될 만한 아름다운 광경과 풍요로운 은혜(주일)를 누리긴 하지만, 순례 자체는 고단하기 이를 데가 없다. 중세 시대의 순례자들은 부러 발걸음을 무겁게 할 만한 짐을 얹어 갔다고 한다. 이를 통해 고난 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무엘과 같은 귀와 입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만 아니라, 사무엘에게도 말씀하신다. 사무엘이 레위 출신의 제사장 가문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 사무엘 앞에서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그들은 순종했다.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게 그들은 법과 명령을 지켰을 따름이다. 이것이 인간의 소명이 아닐까 싶다. 소명이란, 그다지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제사장이든지, 혹은 제사장이 아니든지, 하나님 앞에서 법과 명령을 지키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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