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싫은 책과 문장

7대죄와 현대 교회

habiru 2018. 11. 21. 17:52

  신원하 교수님의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는 성품을 함양하는 기독교 덕 윤리에 관한 좋은 책이자, 동시에 영성을 훈련하는 좋은 지침서처럼 보였다. 다음은 이 책의 일부이다. 


  그런데 수도원 전통과 중세 교회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를 통해 내려온 이 7대죄 교리를, 오늘날 우리가 다시금 기억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을까? 이를 통해 현대 교회가 실제로 무슨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 개신교회가 최근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들을 살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7대죄 교리는 영성 훈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영적 삶이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본래 지음받은 모습으로 회복되어 가는 삶이기에,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죄의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후반 이후, 신학계와 교회 내에서 영성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났는데, 이때 개신교로서는 낯설었던 ‘영성’ ‘영성 형성’ 등과 같은 신조어들이 대거 출현했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독교 전통 안에 있는 영성 관련 사상과 인물들을 연구하는 작업이 활발해졌고, 그 가운데 동방 교회 신학과 수도원 전통의 영성 훈련 방법, 특히 초기 사막 수도사 안토니우스, 에바그리우스, 카시아누스와 같은 동방 수도사들의 사상과 수도 훈련 지침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에바그리우스와 카시아누스가 심도 있게 다룬 일곱 가지 대죄에 관한 가르침이 재발견되면서, 이 주제가 영성 훈련과 관련하여 지니는 본질적 함의에 관심이 고조되었다. 

  둘째, 대죄를 이해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하는 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에 걸출한 기독교 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가 그간 윤리학계의 주된 흐름이었던 행동 결정을 위한 규범을 강조하는 경향에 대항하여 덕과 성품, 인격을 강조하는 윤리 사상의 가치를 역설했고, 1980년대 전후에는 인문학과 신학 분야에도 덕과 성품, 공동체를 강조하는 사상적 흐름이 일어났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개신교 신학자들도 그동안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의 전유물처럼 간주되던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의 덕 윤리를 주목하게 되었고, 아울러 일곱 가지 대죄와 이에 대응하는 덕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교회적/신학적 흐름이 보여 주는 것은, 죄에 대한 이해가 인간의 변화와 성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죄에 대한 의식이나 논의가 거의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리스도인조차 ‘죄’나 ‘죄인’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는 실정이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전 사회에 탈종교화와 세속화가 일어나면서 종교적 교리와 가르침의 영향력이 점점 약화되었고, 특히나 죄에 대한 의식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20세기 정신분석학계의 탁월한 학자 칼 메닝거(Karl Menninger)는 그의 책 <도대체 죄가 어떻게 되었는가?>(Whatever Became of Sin?)에서, 죄라는 단어가 세속화된 미국 사회에서 급속히 사라졌고, 그 결과 죄나 악과 같은 도덕적/신학적 용어는 아예 법률적/심리학적 용어로 대체되어버렸다고 분석했다. 죄라는 말은 이제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사용되는 특수 용어로 축소된 것이다. 그러므로 메닝거는 현대 사회의 각종 악과 고통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죄에 대한 각성과 논의가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죄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양상과 결과를 매일 체감하고 있다. 전쟁과 폭력, 지역 간/계층 간의 갈등, 음란물의 범람 등 갖가지 악이 만연해 있고, 이로 인해 사회에 정의와 평화가 사라지고 있다. 이런 것들은 누가 뭐라 해도 죄의 결과다. 일컫는 말을 바꾼다 하더라도 그 실재는 바뀌지 않는다. 이런 죄의 문제를 직면하여 다루고 해결하지 않으면 개인의 삶과 이 세상에는 진정한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교회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온갖 사회적 갈등과 불의를 일으키는 중심 실체임을 폭로하고, 죄에 대항하는 교회의 오래된 지혜를 새롭게 증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7대죄의 가르침은 오늘날 교회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중요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 신원하,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2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