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을 위한 범종교적인 신뢰의 순례단에 참여한느 동안 결속을 통한 유대감, 수많은 깨달음, 마음의 깊은 변화가 수없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순례 기간에 저는 장애인 지체들이 삶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풍성히 누리는 모습을 보았고 우리의 교제는 희망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연약하고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거부당하고 배척받는 그들 위에 하나님의 현존이 더욱 강력히 임함을 점점 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환영하면 그들은 살벌한 경젱 세계와 업적을 세워야 한다는 긴장감에서 벗어나 마음으로 교제하는 세상, 사랑으로 소소하고 소박한 일을 함께 이뤄 가는 단순하고 즐거운 삶으로 향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연약하고 취약한 우리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일은 화해와 일치의 길을 여는 의미임을 오늘 이 나라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이것이 풍부한 종교적/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서로를 환영하며 함께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평화의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떼제 공동체의 장애인들을 위한 순례단에 참여했던 한 형제로부터.
나는 1913년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에티 힐레숨(Etty Hillesum)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왔다. 어느 날 1만 명의 유대인들과 함께 수용소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다가 그녀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했다. “점점 더 확실해지는 게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도와줄 수는 없다는 것, 우리를 돕도록 우리가 당신을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도와서 최후까지 우리의 내밀한 곳에 있는 당신의 거처를 방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임하시도록 우리가 마음을 열어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이 세상에 들어오시겠는가?
- 장 바니에, 스탠리 하우어워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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