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자료/설교

예수님은 부재 중

habiru 2022. 7. 9. 12:11

 

새번역, 사도행전 16:16~34


16 어느 날 우리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는 여자였다.
17 이 여자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 하고 외쳤다.
18 그 여자가 여러 날을 두고 이렇게 하므로, 바울이 귀찮게 여기고 돌아서서, 그 귀신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니, 이 여자에게서 나오라" 하고 말하니, 바로 그 순간에 귀신이 나왔다.
19 그 여자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돈벌이 희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광장으로 관원들에게로 끌고 갔다.
20 그리고 그들을 치안관들 앞에 세워 놓고서 "이 사람들은 유대 사람들인데, 우리 도시를 소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21 이 사람들은 로마 시민인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는, 부당한 풍속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무리가 그들을 공격하는 데에 합세하였다. 그러자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그들을 매로 치라고 명령하였다.
23 그래서 이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그들에게 매질을 많이 한 뒤에,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그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간수는 이런 명령을 받고, 그들을 깊은 감방에 가두고서, 그들의 발에 차꼬를 단단히 채웠다.
25 한밤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26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27 간수가 잠에서 깨어서,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달아난 줄로 알고, 검을 빼어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28 그 때에 바울이 큰소리로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 하고 외쳤다.
29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해서,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물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2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수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었다. 그리고 그와 온 가족이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았다.
34 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다.


안녕히 지내셨습니까? 점점 무더워져 가는 날씨에 긴팔 옷을 입기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주로 이주한 지 벌써 1달 하고도 보름이 되어 갑니다. 제주라고 별 다를 건 없습니다. 똑같이 먹고 마시고 비워내고, 일하고, 잠을 잡니다. 그럼에도 산과 바다, 하늘을 바라보며 일상에 찌든 생각과 잡념을 즐거움으로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은 덜 바쁘고, 덜 치열하게 살면서 종종 내면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일전에는 제가 사순절 시기에 와서 사순절 설교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부활절 이후 벌써 6주나 지났습니다. 제가 보는 교회력에 따르면, 지난 5월 26일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남겨두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주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를 두고 떠나신 주님 없이 우리는 무얼 하며 살 수 있을까요? 떠나가신 주님을 그리워하며 추억에 잠기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본문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재하셨을 때, 제자들은 무얼 했는지 살펴봅시다.

(바울과 실라가 축사하다)
초기 교회에서 바울 선생님과 실라 선생님은 위대한 전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곳을 순회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해당 본문에 앞서 그들은 빌립보라는 도시에 들렀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미래를 예언하는 영에 사로잡힌 여인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여인을 사로잡은 귀신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 여인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귀신은 여인의 인격을 억압했을 뿐 아니라, 여인의 직업과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악한 영의 영향을 받아 살아온 시간이 길었기 때문인지, 악한 영으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이전 삶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그녀를 이용해 상업적으로 수익을 내던 그녀의 주인들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진정 여인을 사로잡고 있던 건, 악한 영이 아니라 그녀를 공동으로 소유하여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의심해 봅니다.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소유하여 좌지우지 하려던 사람들이 추악하게 느끼지는 건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1절대로 그녀의 주인들이 말하고 자랑하는 로마인의 풍속은 무엇일까요? 악한 영에 사로잡힌 여인을 이용한 비즈니스는 허용하지만, 여인을 구원하여 수익의 소망을 사라지게 한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로마인의 풍속은 저질스러운 것에 틀림 없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삶을 파탄내고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것은 그러한 것에 가깝습니다. 사람보다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속이 그렇습니다. 자기 이익과 분노에 눈이 먼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 악한 영에 들린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다니엘의 환상에 나온 대로 악한 영은 이 세상을 사로잡고 있는 권세(엑수시아)에 가깝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간구하다)
이 일을 통해 바울과 실라 일행은 결국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귀신에 사로잡혔던 여인의 주인들은 무리를 선동해 정당한 절차나 재판도 없이 바울과 실라 일행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비상식적이고도 부당한 사건임에 틀림 없습니다. 마치 죄 없으신 우리 주님께서 매에 맞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바울 일행은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절차적 부당함을 강하게 주장하고, 그들의 폭력에 맞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처럼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방어적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또 찬양합니다. 어려서부터 이 본문을 보면 답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처럼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받고 억울한 사건을 당하면서도 웃으면서 말해야 합니다. “난 괜찮아.” 괜찮지 않은데도, 속이 썩어가는 데도 “난 괜찮아”를 말해야 할 것 같은 도덕적 의무가 지워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의 기도와 간구, 찬양이 부정적 상황을 잊기 위한 주문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편의 위대한 영성가들이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아뢰고 간구하는 기도는 심지어 저주이기도 하고, 악담이기도 합니다.

(시 3:7, 공동번역) 야훼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느님, 구하여 주소서. 당신은 내 원수의 턱을 내리치시고 악한 자의 이빨을 부수시는 분,
(시 137:9, 새번역)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성가들이 직접 복수나 보복을 하지 않습니다. 원수를 갚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보복과 복수는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도 매에 맞으시고, 돌아가실 때에 비슷한 기도를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시며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주시고,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길 탄원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솔직한 인간의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영화롭게 하셨던 것처럼, 바울과 실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신원이 회복되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도 그 모범을 따를 것을 다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모범)
결국 바울과 실라의 선택이 십자가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실 수 있다면, 그들의 결정이 사람을 살리는 행동이었다는 것에도 공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수님을 신원하셨던 것처럼, 바울 일행은 신비한 방법으로 옥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옥문이 열리자 재빠르게 탈옥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결하려던 간수를 살리게 됩니다.
제가 군 생활을 육군 헌병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짐작할 만합니다. 제가 자대 배치를 받기 전, 미결수가 탈옥하는 사건에 대해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창에서 근무를 선 근무조는 전부 징계를 받았습니다. 미결수가 금방 잡혔기 때문에 다행이지, 잡지 못했다면 더욱 큰 징계를 받았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옥문이 열리자 간수는 스스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미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졌기 때문에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바울과 이를 말립니다. 그렇게 간수는 생명을 잃지 않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심지어 간수의 가족까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바울과 실라의 행동은 간수 1명의 구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를 살리는 구원이 된 것입니다. 이 구원에 참여하게 된 그 가족이 침례를 받은 이후 만찬을 나누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만찬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교훈을 기억억하고자 애썼습니다. 비록 더 이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곁에 계시지 않지만, 그들은 주님의 삶과 가르침을 상기하면서 진정한 제자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의 모범을 따랐고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떠나 계시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방법은 십자가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떠올리며, 대속적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를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예배 자료 >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다워지기 위하여  (0) 2022.08.24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  (0) 2022.07.09
사순절은 영양이 풍부하다  (4) 2022.03.26
성전에서 회당으로  (0) 2022.03.17
한 새 사람  (0) 2022.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