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제주 살기" 구직기(2)

habiru 2022. 3. 30. 23:31


1. 유난히도 화창한 화요일 아침이었다. 면접장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오전 9시가 갓 지나고 있었다. 면접 시각이 10시니까 꽤나 이른 시각에 도착했던 것이다. 오늘따라 높이 보이는 하늘과 선선한 공기, 그날은 10월의 어느 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날씨였다. 다만, 수줍게 피어난 벚꽃이 3월이라는 걸 잊지 않고 알려주고 있었다.  

2. 마음을 다잡기 위해 차에 앉아 장일순 선생님의 책을 들었다. 그의 강의를 녹취한 책이었는데, 장일순 선생님의 순수함이 돋보이는 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노자와 맹자를 말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간이 더부살이할 것을 강론하는 그의 가르침은 유쾌하면서도 차분하고, 또한 진지했다. 한 챕터를 읽고 나니 어느새 9시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3. 면접장은 4층이었다. 일부러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건물 1층과 2층, 3층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다소 오래된 건물로 보였지만, 정갈하게 정비된 탓에 지저분해 보이진 않았다. 콘크리트 건물은 낮은 채도 때문에 늘 슬퍼 보인다. 하지만 외관을 잘 관리한 까닭인지 건물은 슬퍼 보이몈허도 단호해 보였다.

4. 4층에 도착했더니 누군가 인사를 한다. 그는 목례와 함께 작은 방으로 날 인도하며 내게 따뜻한 녹차 한 잔을 건넸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녹차와 잘 어울렸다. 혼자 작은 방에 앉아 있었더니, 곧이어 2명이 연달아 들어왔다.

5. 처음 본 두 사람의 성격은 정반대로 보였다. 수줍어하는 여성과 다소 허세가 보이는 남성이 앉아 시답잖은 대화를 나눴다. 어색한 탓인지 자주 소리 내어 웃던 여성은 순수해 보였다. 경직된 탓에 다소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던 그의 얼굴 근육은 그의 미소와 달리, 떨리는 마음을 전달하는 듯했다. 그에겐 어떤 적의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포커페이스였으려는도 모른다. 한편 거들먹거리는 듯한 남자의 말투엔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와 나 사이에 그럴싸한 대화가 이어졌지만, 난 그에게서 어떤 호감도 느끼지 못했다. 어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6. 면접이 시작됐다. 면접위원 4명, 피면접자 3명이 마주앉았다. 여러 차례 질문과 답이 오갔고, 각자 자신을 그만의 방식으로 드러내 보였다. 서로는 자신이 가진 역량과 능력을 전달했지만, 면접자는 그들의 솔직함과 진지함을 더욱 관심이 있어 보였다. 면접이 마친 후, 나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떠올리며 면접장을 떠났다.

7. 오후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인사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에겐 내 진지함이 와닿았던 듯하다. 이로써 4월 중 이직이 확실시되었다. 2주 뒤, 다시 제주에 올 때도 유채꽃과 벚꽃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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