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치료 과정

종말(終末)의 일상성

habiru 2020. 6. 22. 20:17

 

 

 

 

1. 종말(終末)이란, 현상의 맨 끝을 뜻한다고 한다. 이런 연고로 기독교 세계에서는 일상적이지 않은, 불가해한 신적 신비를 말할 때에 종말의 언어가 자주 쓰이고는 했다. 이러한 비일상적인 하나님의 신비를 향한 호기심은 사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듯하여, 제자들도 종말에 대하여 예수님께 물었던 적이 있다(마 24-25장). 그래서 사람들은 마태 공동체가 종말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유대-그리스도인 집단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는 하나 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으로 평범한 사람의 심연에 호기심을 가장한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마찬가지로 나도 종말에 대한 호기심 한줌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종말을 맞이하게 될까 봐 마음 한편에 두려움을 갖고 살아간다(조금 전에도 화장실의 전등이 깜빡이는 것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종말이 온 것은 아닐까, 뚱딴지 같은 생각이 불현듯 지나갔다). 아마 그만큼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떨림이 수반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래전, 베리칩이나 666표를 말하며 공포를 주입하던 사람들로부터 나는 여전히 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웃기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나만 빼고 사랑하는 이들이 휴거라도 하면 어쩌나 두려움을 갖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는 가슴 한편에 켜켜이 쌓여 있는 죄책감의 발로일 것이다. 


3. 예전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의 나는, 갑작스레 포성이 들릴 때면 화들짝 놀라고는 했다. 혹여나 종말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종말이 아니라, 북한과 대치하고 있던 시절의 긴장감에서 연유한 종말이었다. 연평도 포격사건을 목격했던 터라, 한 운명체의 종말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공포가 있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 운명체의 종말이, 곧 나의 종말이었던 것이다. 


4. 요새 들어 나는 종말에 대해 더욱 자주 생각하고는 한다. 얼마 전, 갑상선암일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종종 나 개인의 종말 앞에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바보의사라고 불리던 김수현 씨는 발자취가 그렇게나 아름다웠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발자취를 남긴 적이 있었을까 되새겨본다. 정호승 시인의 말마따나,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윤동주 시인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밥만 많이 먹고 강아지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생의 순례자가 될 수 있을까"

- 정호승,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사뭇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부끄러운 마음이 전부다. 종말이 아무리 비일상적이고 불가해한 신적 신비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5. 그럼에도 나는 지금 느끼는 이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진 않는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제자들도 응당 그리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매 주일, 일상에서 물러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부끄러움을 경험하는 훈련을 반복하면서도 제자들 또한 반복하여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을 것이란 확신이 내겐 있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일상을 살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종말은 비일상적인 사건이지만, 종말을 맞이하기까지 사람들은 누구나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일을 하다가, 또 다른 이는 잠을 자다가 종말을 홀연히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종말의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게 긴장을 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종말의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게 복이기도 하고 말고..^^ 하지만 연속되는 일상 중에서도 종말의 비연속성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훈련은 중요할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갑상선암일지 모르는 질병(?)이 종말을 상기시키는 자극이 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매 주일같은 하루를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사하다. 이 시기를 더욱 보람있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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