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싫은 책과 문장

깊이 사고하는 동시에 열정적인 (설교)

habiru 2017. 9. 6. 16:50

일부 설교자들은 극단적으로 깊이 사고한다. 그들의 책상에는 주석들과 기타 책들이 높이 쌓여 있다. 그들의 성경적 정통은 나무랄 없이 완벽하다. 그들은 공부할 아니라, 공부의 열매를 설교단으로 가져온다. 모든 설교는 고통을 감내한 성경 석의와 적용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들의 설교는 침체될 대로 침체하여 건조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설교단에 기대어,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간청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설교에는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열기도, 아무런 심장도, 아무런 열정도 없다. 찰스 시므온(Charles Simeon) 설교를 듣고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설교를 듣고 어린아이가 이렇게 외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엄마, 아저씨가 무엇 때문에. 저렇게 흥분하시는 거죠?" 도대체 어느 누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면서 그것에 대해 감동을 느끼지 않을 있단 말인가?

다른 한편, 어떤 설교자들은 온통 불일 빛이 아니다. 그들은 설교단에서 호통을 치며 지껄여댄다. 그들은 바알의 예언자들처럼 발작에 이르기까지 흥분한다. 모든 설교는 길고 열렬한, 심지어는 끝도 없이 호소다. 그러나 그러한 호소에 앞서 아무런 강해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을 하라는 재촉을 받고 있는 것인지 혼돈스럽다. 강해 없이 호소 없고 호소 없이 강해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안전하다. 고린도후서 5장에 나타난 사도 바울은 둘을 결합한 좋은 사례다. 먼저 강해가 나왔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복하게 하시고"(18) . 그러고 나서 호소가 나왔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20). 

리처드 백스터가 좋아하는 금언 하나는 '먼저 빛이 있은 다음 열이 난다"였다. 스펄전은 이렇게 썼다


불은 물론 빛도 있어야 한다. 일부 설교자들은 온통 빛일  불이 없는 반면에, 다른 설교자들은 온통 불일 빛이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불과 모두다


이와 유사하게,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설교와 설교자들>(Preaching and Preachers, 복있는사람)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설교란 무엇인가? 불붙은 논리(logic on fire) 아닌가! 감동적인 이성(eloquent reason) 아닌가! 이것이 모순인가? 물론 아니다. 진리에 대한 이성은 사도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대단히 감동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불붙은 신학이다. 나는 불붙지 않은 신학은 불량 신학이거나,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불량이라고 주장한다. 설교는 불붙은 사람을 통하여 나오는 신학이다


- 존 스토트, <살아 있는 교회>, 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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