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자료/설교

사랑 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habiru 2022. 9. 3. 16:26

[빌레몬서 1:16-20, 새번역]
16. 이제부터는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나에게그러하다면, 그대에게는 육신으로나 주님 안에서나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생각하면, 나를 맞이하듯이 그를 맞아 주십시오.
18.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거든, 그것을 내 앞으로 달아놓아 주십시오.
19. 나 바울이 친필로 이것을 씁니다. 내가 그것을 갚아 주겠습니다. 그대가 오늘의 그대가 된 것이 나에게 빚진 것이라는사실을 나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20. 형제여, 나는 주님 안에서 그대의 호의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마음에 생기를 넣어 주십시오.


(인사)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금일 예배는 비대면 예배로 진행이 됩니다. 태풍 소식으로 제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비대면 예배를 드리게 되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모든 분들의 가정에 큰 피해 없이 무사히 태풍이 지나가길 바랍니다. 비록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지는 못하나, 시공간을 초월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으며 모두 예배드리시길 바랍니다.
(요약) 지난 주일에는 창세기 2장의 안식일 본문을 함께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돌봄과 사랑의 소명이 노동과 안식의 순환을 통해, 시간을 통해 점차 명확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창조사역의 완성을 향해 우리의 소명을 이루어 나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더불어 하루, 한 주의 순환, 안식년과 희년을 통한 영성훈련에 대해서도 나눴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통해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제기: 희년) 그런데 희년이라는 제도가 역사적으로 시행된 적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런 논쟁을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논의 자체가 신앙인으로서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안식년, 희년이 이상적인, 실현 불가능한 성격의 것이라면 말입니다. 안식년과 희년 제도에 대해서는 레위기 25장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제가 대독해 드리겠습니다.

[레 25:3-13, 새번역]
3. 여섯 해 동안은 너희가 너희 밭에 씨를 뿌려라. 여섯 해 동안은 너희가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두어라.
4. 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나 주가 쉬므로, 땅도 반드시 쉬게 하여야 한다. 그 해에는, 밭에 씨를 뿌려도 안 되며, 포도원을 가꾸어도 안 된다.
5. 거둘 때에, 떨어져 저절로 자란 것들은 거두지 말아야 하며, 너희가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저절로 열린 포도도 따서는 안 된다. 이것이 땅의 안식년이다.
6. 땅을 이렇게 쉬게 해야만, 땅도 너희에게 먹거리를 내어 줄 것이다. 너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너와 함께 사는 나그네에게도, 먹거리를 줄 것이다.
7. 또한 너의 가축도, 너의 땅에서 사는 짐승까지도,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을 먹이로 얻게 될 것이다."
8. "안식년을 일곱 번 세어라. 칠 년이 일곱 번이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사십구 년이 끝난다.
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뿔나팔을 크게 불어라. 나팔을 불어, 너희가 사는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여라.
10. 너희는 오십 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 가 희년으로 누릴 해이다. 이 해는 너희가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이다.
11. 오십 년이 시작되는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지켜야 하는 해이다. 희년에는 씨를 뿌리지 말고, 저절로 자란 것을 거두어서도 안 되며, 너희가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저절로 열린 포도도 따서는 안 된다.
12. 그 해는 희년이다. 너희는 그 한 해를 거룩하게 보내야 한다. 너희는 밭에서 난 것을 먹게 될 것이다.
13. 이렇게 희년이 되면, 너희는 저마다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별히 레 25:10에서는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라고 합니다. 채무를 졌던 자, 채무를 갚지 못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종이 되었던 자, 모두에게 자유가 선포됩니다. 누군가에게 자유란 탕감받는 것이기도 하며, 신분의 해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 6:12, 새번역]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여기에서 “죄 지은 사람”이라는 단어 ὀφειλέτης(오페일레테스)는 “채무자”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용서하다”라는 뜻의 단어 ἀφίημι(아피에미)는 “탕감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문을 경제적 용어로 말하면, 빚진 자를 탕감해 달라는 간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비유로 예수님께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일백 데나리온의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을 말씀하셨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용서”라는 단어가 대단히 숭고한 의미이면서, 동시에 “탕감”이라는 뜻의 경제적 용어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숭고한 신앙과 현실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밀양”에서 제기하는 문제처럼, 우리의 신앙을 반성해 볼 만한 대목입니다.

[문제제기: 요약]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제도화했던 희년이 단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유인, 곧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희년이 실행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린 이스라엘마저 인간 사회의 불의한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연약함과 불의함을 지적하는 교훈으로 끝낼까요? 인간과 인간 사회의 불의를 정죄하는 기능으로 희년을 이해하기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면책권을 주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해결: 빌레몬서]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인 빌레몬서의 의미가 있겠습니다. 빌레몬서는 매우 짧은 서신 중 하나이지만, 그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였던 빌레몬과 그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당시 바울은 수감되어 있는 상태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그런 바울을 도왔던 사람이 오네시모였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복음을 위해 수고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예 신분: 오네시모] 그런데 바울을 돕기 전의 오네시모는 빌레몬이 부리던 종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는 노예 제도가 일반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빌레몬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노예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의 종이였던 오네시모는 그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종이 도망치기 전, 주인의 집에서 재산 일부를 훔쳐 달아나던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있어서 오네시모는 무익한 사람이었고, 쓸 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 회심을 하게 되면서 일이 꼬이게 된 것 같습니다. 빌레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빌레몬, 오네시모의 삼각관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무척이나 난감한 삼각관계를 처리하기 위해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부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실 것 같습니까? 빌레몬과 그 교회에 안부 인사를 한 바울은 빌레몬을 칭찬하는 것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본론을 말하기 전, 바울은 빌레몬을 칭찬하여 빌레몬의 마음을 누그러뜨립니다. 왜냐하면 이 편지를 빌레몬에게 들고 간 사람이 오네시모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편지를 들고 온 오네시모를 본 빌레몬이 분노한 한편, 황당해 했을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몬 1:11-12, 새번역]
11.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2.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는 바로 내 마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에게 부탁하길, 이제는 오네시모를 종이 아닌, 형제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함께 식사하는 식구로, 한 아버지를 섬기는 형제로 불리게 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몬 1:16;21, 새번역]
16. 이제부터는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나에게 그러하다면, 그대에게는 육신으로나 주님 안에서나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21. 나는 그대의 순종을 확신하며 이 글을 씁니다. 나는 그대가 내가 말한 것 이상으로 해주리라는 것을 압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아 든 빌레몬이 어떻게 했을지 성경에 나와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들고 간 오네시모를 받아들이고, 그를 형제로 대접하지 않았다면 빌레몬서는 잊혔을 것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빌레몬서가 후대에 계속해서 읽혔을 것입니다. 아무런 효과도 없는, 무능하고 실패한 편지였다면, 어느 누가 빌레몬서를 권위 있는 성서 중 하나로 채택되는 데에 찬성할 수 있었을까요. 빌레몬은 분명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빌레몬은 자신의 삶 속에서 희년의 정신을 실천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효과: 빌레몬의 교훈]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탕감과 해방의 희년이 역사적으로 한 번도 실행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한 사람으로서, 우리도 희년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공동체 안에서 우리도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도 진정 사람됨을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실천 방법들이 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양반과 종이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한 일이 있었고, 오히려 그 교회에서 양반 아닌 종이 장로가 되어 교회 일을 치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 다툼과 갈등, 분열이 생기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건들이 탕감과 해방을 선포한 희년 정신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탕감과 자유, 용서의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을까요? 가장 가까운 가족, 친척, 친구의 빚을 탕감하고 용서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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