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싫은 책과 문장 66

신앙의 네 가지 의미

동의로서의 신앙(faith as assensus) 라틴어 ‘아센수스’(assensus)의 뜻은 ‘동의’(同意)로서 그에 가장 가까운 영어 단어는 assent이다. 이것은 믿음 조항으로서의 신앙(faith as belief), 곧 어떤 명제에 대해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서, 어떤 주장이나 선언이 참되다고 믿는 것을 뜻한다. 때때로 신앙에 대한 명제적 이해라고 불리는 이런 신앙 이해는 오늘날 교회 안과 밖에서 신앙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의미이다. 신뢰로서의 신앙(faith as fiducia) 라틴어 ‘피두시아’(fiducia)에 가까운 영어는 없다. 이 라틴어와 가장 가까운 영어 fidiciary(신용에 의한)는 우리에게 별로 적합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라틴어를 “신뢰”(trust)로 번역하여..

신의 급습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프랑스를 여행간 적이 있었다. 기차가 멈추어 서자 어떤 중년부인이 객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 부인 곁에는 지적 장애인으로 보이는 17세 가량 되는 여자애가 손수건을 눈에 댄 채 서있었다. 그 부인은 조용히 그러나 엄숙하게 말했다. “제 사랑하는 딸이에요.” 그러자 예닐곱 명 정도의 승객들이 이러저리 조정하더니 좌석 한 쪽을 통째로 비워주었다. 여자아이는 몸을 쭉 뻗고 드러누워 자기 엄마 무릎에 머리를 베고 외투로 몸을 덮고는 흐느끼면서 잠이 들었다. 다른 승객들은 비좁게 앉아 경외하는 자세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신이 객차 안에 급습하셨으므로 조심하는 게 최상책이다. - 플로리다 피어 스콧 맥스웰, , “사랑, 죽음, 그리고 현대성”, 82–3.

배짱이란 역경 속에서

배짱이란 역경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경험으로 보아서는 언제나 인간에게 자극제가 된다. 나는 배짱이 있는 사람이 좋다. 즉, 어려움에 단련된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사실이다. 그들은 현실적이며, 쉽게 겁먹지 않으며, 어린애 같은 요구를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험난한 삶의 요인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자질을 만들어낸다. 돌아다보면 빈곤은 도덕성을 낳는 것 같았다. 가난하면 자기희생적이 되고 불평이 없어지며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개성적이고 용감해진다. 그런데 풍요의 시대라 일컫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현실화된 지금, 배짱인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점점 사라지고 있는 옛 미덕에 불과할까? 그게 실제로 사라져버린다면 몹시 슬프고도 놀랄 일임에 틀림없다. 응석받이 아이..

“라면을 끓이며”

된장이나 간장, 무짠지, 오이지, 고추장아찌는 맛의 심층구조를 갖는다. 시간이 그것들의 맛의 심층을 빚어낸다. 기다림 없이는 짠지다운 짠지를 맛볼 수 없다. 김장이나 오이지를 담그고 나서 우리는 설레는 환상을 참으며 그것들의 숙성을 기다려야 한다. 미리 뚜껑을 열고 들쑤시면 동티가 나서 다 망친다. 시간이 간을 재료의 안쪽으로 밀어넣고 재료의 성질을 변화시켜 맛의 심층을 이룬다. 그 맛은 거기에 절여진 시간의 맛이다. 된장찌개 국물은 된장과 여러 건더기들의 삼투와 종합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국물은 된장도 아니고 개별적인 건더기도 아닌, 어떤 새로운 창조물이다. 거기에 깊이가 드리워진다. 그 깊이는 인간을 위안하는 힘이 있다. 미역국의 위안은 섬세하고 된장찌개의 위안은 깊다. 이 깊이와 섬세함은 스밈과 우..

"트롤리의 세 수도사" (10월 19일 목요일)

오늘 오후, 네덜란드 친구 마리아와 루이 테르스테흐Louis Tersteeg가 트롤리에 와서 반나절을 보내고 갔다. 라 페름에서 점심을 먹고 로라투아르에서 짤막하게 기도했으며, 마담 바니에를 잠시 만났고, 라 포레스티에르 식구들과 차를 마셨으며, 공동체 전체가 드리는 예배에 참석한 뒤에, 라르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쉼터, 르 발 플로리Le Val Fleuri에서 저녁을 먹었다. 마리아와 루이는 둘 다 오늘 보고 들은 일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라르쉬가 여러 면에서 놀라웠던 모양이다. 다시 콩피에뉴Compiegne으로 나갔을 때, 루이가 말했다. "성만찬을 도왔던 세 분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겁니다." 마리아도 동감이었다. 하얀 예복을 입은 장애인 셋이 제단 곁에서 토마 신부를 도와 예물을 준비하는 모습..

“연약한 공동체 라르쉬와 하나님과의 우정”

장애인들을 위한 범종교적인 신뢰의 순례단에 참여한느 동안 결속을 통한 유대감, 수많은 깨달음, 마음의 깊은 변화가 수없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순례 기간에 저는 장애인 지체들이 삶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풍성히 누리는 모습을 보았고 우리의 교제는 희망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연약하고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거부당하고 배척받는 그들 위에 하나님의 현존이 더욱 강력히 임함을 점점 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환영하면 그들은 살벌한 경젱 세계와 업적을 세워야 한다는 긴장감에서 벗어나 마음으로 교제하는 세상, 사랑으로 소소하고 소박한 일을 함께 이뤄 가는 단순하고 즐거운 삶으로 향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연약하고 취약한 우리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일은 화해와 일치의 길을 여..

소명을 찾아가는 길(from. 헨리 나우웬)

프롤로그 예일 대학 신학부에서 학샐들을 가르치던 1970년대 말엽, 내 삶을 순식간에 뒤집어놓을 인물이 찾아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심지어 하찮은 일로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님, 제가 어디로 가길 원하시는지 알려주시고 거기에 흔쾌히 따르게 해주세요"라고 했던 기도의 응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책도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심방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한다. 어느 날 오후, 뉴 헤이븐New Haven 아파트의 초인종이 울렸다. 문간에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얀 리세Jan Risse라고 합니다. 장 바니에Jean Vanier 씨가 안부를 전하라고 하셔서요." 장 바니에는 물론이고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의 공동체 라르쉬(L'Arche, 방주)에 관해서도..

7대죄와 현대 교회

신원하 교수님의 는 성품을 함양하는 기독교 덕 윤리에 관한 좋은 책이자, 동시에 영성을 훈련하는 좋은 지침서처럼 보였다. 다음은 이 책의 일부이다. 그런데 수도원 전통과 중세 교회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를 통해 내려온 이 7대죄 교리를, 오늘날 우리가 다시금 기억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을까? 이를 통해 현대 교회가 실제로 무슨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 개신교회가 최근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들을 살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7대죄 교리는 영성 훈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영적 삶이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본래 지음받은 모습으로 회복되어 가는 삶이기에,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죄의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20..

<이 놈의 경제가 사람잡네>

가난을 향한 탈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의 도시 어딘가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나와 밖으로 나가면 가난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추운 거리에서 얼어 죽은 사람에 관해서는 보도하지 않습니다. 오늘 굶고 있는 많은 아이들 역시 뉴스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정말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하고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푹 먹인 것처럼 뻣뻣한 목덜미를 가진 그리스도인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상한 교양인들은 조용히 차 한 잔을 하면서 신학적 사변을 논합니다. 아니오! 이건 아닙니다! 우리는 용감한 그리스도인으로 변신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찾아야 ..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

기독교 최대의 거짓말?성경을 관상할 때 우리가 하는 일은 정보와 교육을 위한 묵상 이상이다. 그런 식의 성경공부도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39-4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어떤 관계를 막론하고, 좋은 관계를 이루는 요소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과 그런 관계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예컨대,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만, 일단 그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면 말로는 도저히 그 경험을 표현할 수 없다. 성경을 관상하면, 평범한 공부로는 안되는 친밀하고 신비적인 방식들로 ..